주름진 이 손

  • 입력 2017.05.12 13:43
  • 수정 2017.05.12 13:48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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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가뭄이 지속되는 가운데 비가 흩뿌린 지난 10일 충남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가산리의 한 참깨밭에서 이안순(77)씨가 참깨순 주위로 비에 젖은 흙을 덮어 풀이 더 이상 자라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봄 가뭄. 메마른 흙에 먼지 피울까 흩뿌린 비에 하늘이 야속할 만도 한데 할매는 밭고랑에 눌러 앉았다. 열악한 환경을 딛고 올라온 참깨순이 고맙기도 하거니와 덩달아 기세를 펴고 뻗쳐오는 잡초를 뽑기 위해 할매의 손은 금세 흙 범벅이 됐다.

양푼그릇으로 흙을 퍼 참깨순 주위를 덮고 다지기를 여러 번, 비닐 사이로 드러난 풀을 매는 것도 수십 차례, 손가락 마디마디 엉킨 흙은 바짝 말라붙었고 손톱은 위아래 할 것 없이 흙으로 검게 물들었다. “서울서 고생하는 자식들 참기름도 짜 주고 장에 내다 팔아 용돈도 벌고 하면 좋잖어.” 앉았다 섰다 반복되는 노동은 고되고 지루할 법한데 참깨순 하나하나에 깃든 정성은 늘 한결같다.

문재인 대통령 시대가 열렸다. 취임사 중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는 대목을 곱씹는다. 지난 10년, 그리고 더 지난 10년 … 이젠 300만도 채 안 되는 농민들에게 과연 ‘기회는 평등했는지, 과정은 공정했는지, 결과는 정의로웠는지’ 뒤늦게나마 되묻는다. 강산도 변해버린 그 오랜 시간 정부의 일방적이고 강요된 희생 속에서 농민들의 삶은 처절하게 피폐해지고 쪼그라든 건 아닌지… 되묻고 싶다.

꼭, 이 손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볼품없이 갈라지고 부르틀지언정 더 나은 삶의 희망을 담아 문재인 대통령을 만든 손이고 ‘국민의 나라’를 일군 손이고 대대로 이 땅의 먹을거리를 책임져온 손이다. 이 손이 사라지면 농업도 나라도 없다. 새 정부가 성공해야 할 이유, 주름진 이 손에 있다.

봄 가뭄이 지속되는 가운데 비가 흩뿌린 지난 10일 충남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가산리의 한 참깨밭에서 이안순(77)씨가 참깨순 주위로 비에 젖은 흙을 덮어 풀이 더 이상 자라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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