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농활] 민폐의 종류

  • 입력 2017.04.28 14:25
  • 수정 2017.04.28 14:33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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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오랜만의 농활이자 첫 기자농활을 가며 ‘최소한 민폐는 끼치지 말자’고 맹세했다. 대학생 시절, 농활 가서 농사일 돕다 의도치 않게 망친 작물의 양이 얼마일까. 최대한 예의 바르게 행동하자는 규율을 일부러 어긴 적은 없지만, 본인도 모르게 농민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건 몇 번일까. 이 같은 과거에 대한 부질없는 반성과, ‘오늘은 잘 하자’는 맹세를 다지며 경기도 연천군의 이석희 연천군친환경농업인연합회 회장 농가로 갔다.

이 회장은 무농약 농법으로 쌀과 양파, 감자 등을 재배한다. 재배 작물들은 경기도 곳곳에 학교급식용으로 공급한다. 이래저래 손이 많이 들어갈 텐데, 사실상 혼자 농사짓는다고 한다.

 

오전엔 비닐하우스 내 벼농사용 모판 100여개를 팰릿에 싣는 일부터 했다. 쉴 새 없이 모판들을 팰릿 위에 쌓았다. 모판 옮길 때 통로가 좁아서, 머리에 닿는 하우스 천장의 스프링클러들을 일일이 비켜가며 옮기느라 조금 불편한 것 외엔 작업은 순조로웠다.

그러다 결국 맹세를 어겼다. 하우스 한 켠에 흰 천을 깔고 그 테두리에 나무막대기들을 둘러친 공간이 있었는데, 의도치 않게 그곳을 밟자 ‘우드득’ 소리가 났다. “안 돼! 거기 밟으면 안 돼!” 모판들이었다. 온도 조절용으로 흰 천을 덮어놓았고 나무막대기는 ‘밟으면 안 되는 곳’이란 표식이었다. 아무리 몰랐다 해도 죄송스러움을 금할 수 없었다. 이 회장은 흰 천들을 걷어낸 뒤 기자가 밟은 모판들의 흙을 손으로 평평히 다졌다.

오후엔 70포대의 유박비료를 트럭에 싣고 곳곳의 논에 옮겼다. 마지막 논에서 약 20포대를 트럭에서 내릴 때, 이 회장에게 “나머지는 제가 다 옮길게요. 회장님은 잠시라도 쉬세요”라 하고 혼자 포대를 내렸다. ‘진작 그렇게 말할 걸’ 하고 후회하면서. 그래도 이 회장의 이 한 마디에 조금이나마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오늘 작업을 나 혼자 했으면 세 배는 더 힘들었을 텐데….”

 

중간에 이 회장이 학교급식 공급업체 관계자를 급히 만날 일이 있어 같이 나갔다. 연천은 그야말로 접경지대다웠다. 군부대가, 대전차 방호벽이, ‘지뢰 제거 기간’ 플래카드가 곳곳에 있었다. 미군 부대 훈련장임을 알리는 표지판도 보였다. 이 회장은 작업을 같이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하루빨리 남북관계가 좋아졌으면 한다. 파탄난 개성공단도 재개하고, 사드배치도 막고, 대북 쌀 지원도 재개해서 친환경 쌀도 이북에 보내야 하는데….”

그때, 하우스 옆 원두막에 틀어놓은 라디오에선 트럼프가 한반도 인근 해역에 항공모함 칼빈슨 호를 보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리고 기자가 이 글을 마무리 짓던 순간, 경북 성주에서 사드 포대가 배치되고 있다는 지인들의 문자가 전해졌다. 본인은 최소한 이들처럼 ‘대놓고’ 민폐를 끼치려고 하진 않았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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