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과 농촌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

[인터뷰] 유문철 단양군농민회장

  • 입력 2017.04.28 13:58
  • 수정 2017.04.30 09:32
  • 기자명 한우준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유문철 전농 단양군농민회장이 지난달 26일 못자리를 준비하고 있다. 유 회장은 “농촌이 소멸되지 않기 위해선 젊은 소농을 육성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40대에 열 살 아들을 둔 젊은 농민, 그는 스스로를 ‘천연기념물’이라고 칭했다. 그 젊은 나이에 농민회장까지 맡고 있다니 오히려 부족한 표현이다. 시군농민회들이 점점 작아지고 없어지는 현실, 유문철 단양군농민회장은 농민운동의 불모지에서 2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농민회를 탄생시켰다.

 

귀농인, 농민회장이 되다

“도시에선 힘들고 괴로웠어요. 앞길이 뻔히 보이는 게 도시에서의 삶이고. 좋은 직장에 들어갔지만 콘크리트 건물 속 선배들의 모습이 내 미래란 걸 깨닫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여러 가지 사연도 있긴 하지만 사실 그게 다에요. 대도시에서의 삶은 평생 살기엔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 돌아온 게 올해로 10년째네요.”

그렇게 친환경농사를 시작한 유 회장은 지난 2015년 고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죽는 것을 본 뒤 본격적으로 농민운동에 뛰어들었다. 당시 그는 서울로 올라와 투쟁하는 거의 유일한 단양 농민이었고, 부검 정국을 겪으며 조직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농민회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저는 우리 지역에도 백남기 농민의 분향소를 꼭 세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단기필마로는 역부족이란 걸 깨달았어요. 뜻을 같이 하는 농민들을 찾아 결국 단양에 분향소를 만들었는데 그게 농민회를 위해 세운 깃발이 됐습니다.”

일단 농민회를 만들기로 결심은 했지만 전국농민회총연맹의 규정에 맞는 인원과 조직을 마련할 수 있을까 고심도 많았다. 다행히 박기수 당시 의장을 비롯한 충북도연맹 농민들의 지지에 힘을 얻어 단양군농민회는 지난해 11월 3일 준농민회 자격을 얻고 단양의 촛불집회를 주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난 1월에는 전농으로부터 정식으로 농민회 창립을 인정받아 대의원들 앞에서 깃발을 흔들며 그 첫 출정을 알렸다.

 

‘유기농민’ 유문철

그는 페이스북에서 ‘유기농민’이라는 필명으로 유명하다. 그는 농민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우리도 당신들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고 한다.

“천막을 치면 오시는 분들이 하나 같이 하는 말이 있었어요. ‘좀 와 보고 싶은데(뭔가 무섭고)’, ‘들어가기가 조금 뭐 하고…’ 농민들이 맨날 머리띠 두르고 횃불드는 사람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시민들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어서 페이스북을 시작했네요. 처음엔 실명으로 글을 쓰다 보니 제가 농민이라는 게 잘 전달이 안 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부기명으로 ‘유기농민’을 넣으려고 했는데 그게 실수로 이름이 돼 버렸고.”

‘유기농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해 백남기 농민 부검 저지와 전봉준투쟁단의 트랙터 상경 등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투쟁현장들을 최일선에서 농민의 시각으로 그려냈다.

“직업기자들이 여기서 부족한 게 있죠. 농민의 심정, 투쟁현장의 상황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거. 제가 그렇게 기사를 쓰니 신문사에서 좋은 반응을 보였고 결과적으로 조회수도 높아 지난 투쟁에 많이 도움이 됐으리라 생각해요.”

그가 농민운동을 하는 방법은 ‘그저 할 수 있는 한 무엇이든지 다 하는 것’이다. 농사면 농사, 글이면 글, 싸움이면 싸움, 도시와 농촌을 모두 겪어 본 청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그는 훌륭하게 해내고 있었다.

 

앞으로 우리의 농업은

“친환경 농업으로 대전환을 해야 하는 게 맞기는 해요. 그렇지만 농민들을 살리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할 건 (농사의 방법이 아니라) 제도의 중심이 생산 지원에서 소득 지원으로 옮겨 가야한다는 거에요.”

친환경 농업을 육성하겠다는 한 대선후보의 공약이 떠올라 ‘유기농민’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 농업 정책이 앞으로 소농 중심의 소득 지원에 중점을 둬야한다고 생각하는 그는 국가가 나서서 이를 추진한다면 우리 농업의 많은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믿는다.

“그렇게 개방농정을 하면서 농촌진흥청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요? 외국산하고 경쟁이 안 되는데 우리 농산물 경쟁력 아무리 올려봐야 어디에 씁니까? 차라리 농진청을 없애고 그 많은 예산을 다 직불제로 돌리면 지금보다는 농민들의 삶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그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급격한 인구 감소로 인한 농촌의 소멸이다. 그래서 소득 지원은 젊은 농민 육성이 뒷받침돼야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생각 또한 갖고 있다.

“농민수당이 됐든 국가공무원제가 됐든 그것만으로는 농촌이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 없어요. 젊은이들이 시골로 와서 농사짓고 아이 낳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소농을 ‘육성’하는 국가 차원의 움직임이 필요합니다.”

유 회장을 찾아 갔을 때 마당 한쪽에서 조그맣게 못자리 준비 작업을 하고 있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그는 파종에서 수확까지 이르는 전 과정을 마을 옆 대가초등학교 아이들과 함께 하며 경험을 쌓도록 돕는 `농부교사' 활동도 하고 있다. 먹거리의 소중함, 농업과 농민의 가치를 아는 아이들이 늘어나 농촌이 살아나길 바라며.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