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고래잡이 ①] 고래를 찾아 장생포에 가다

  • 입력 2017.04.28 10:43
  • 수정 2017.04.28 10:47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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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고래는 물고기가 아니라 고래목에 속하는 포유동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다에 산다. 종류별로 그 크기가 각각 다르지만, 큰 놈은 길이가 25 미터가 넘고 몸무게도 코끼리의 스물다섯 배에 달한다. 따라서 예로부터 고래는 우리의 생활 속에서 ‘큰 것’ 혹은 ‘강한 것’의 상징으로 인식돼 왔다. 강한 자들의 싸움에 끼어들었다가 약자가 피해를 볼 때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하고, 규모가 큰 부잣집 기와집을 일컬을 때에도 ‘고래등같은 기와집’이라고 얘기한다.

나는 남해안의 섬에서 태어났지만 소싯적에 고래나 혹은 고래잡이를 구경한 적은 없다. 아니, 있다. 어떤 날, 마당 끝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을 때 여남은 마리의 고래들이, 마치 접영선수들이 경영을 하듯이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한 방향으로 몰려가는 모습을 꿈결처럼 구경하곤 하였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런 날 저녁이면 이웃마을에 갔던 아부지가, 김을 떠서 말리는 발장에다 고래 고기 서너 근을 싸 가지고 돌아왔다. 엄니는 그 중에서 기름을 따로 떼 내어서 말려 보관했다. 솥뚜껑에 전을 부칠 때 쓰기도 했지만 종지에 기름을 넣고 가장자리에 심지를 걸쳐 불을 켜기도 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 고향 앞바다에서 내가 구경한 것은 집채만 한 그것이 아니고, 기껏해야 길이가 2미터도 안 되는 귀여운 놈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걸 ‘상쾌이’라고 했는데 나중에 표준어 이름을 알고 보니 쇠돌고래과에 속하는 ‘상괭이’란 놈이었다. 그것도 고래냐고? 작기는 해도 뭐, 고래는 고래였다.

겨울 밤, 잠자리에서 아부지가 가끔 내게 ‘진짜 고래’ 얘기를 들려주었다.

“어떤 사람이 노를 젓고 바다로 나갔드란다. 그란디 뜬금없이 파도가 치는가 했듬만, 앞이 깜깜해져분 것이여. 요거이 뭔 일이라냐, 한참 만에 눈을 떠보니, 거그가 고래 뱃속이드란다. 둘러보니 사람들이 여그저그 옹기종기 앉어 있었는디…”

칼 가는 사람이 고래 뱃속 천장에 매달린 간 한 덩이를 싹둑 잘라내자, 숯장수가 불을 피워서 고놈을 굽고…그렇게 며칠을 지내다가 어느 날 똥구멍으로 빠져나왔다는, 그런 얘기였다.

 

집채만 한 체구를 수면 위로 드러냈다가 분수공(噴水孔)으로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낸 다음,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자맥질하는 고래의 위용은…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그런데, 수십 년 동안 검푸른 바다를 누비면서 그 거대한 고래들을 쫓으며 살아온 사람들이 있다. 아니 있었다. 고래잡이배, 곧 포경선의 선원들이다.

울산시 남구 장생포.

내가 찾아간 때가 2001년 겨울이었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그곳은 서남해의 흑산도와 더불어 우리나라 고래잡이의 전진기지였는데, 1985년에 발효된 국제포경위원회의 고래잡이 금지 조처 이후, 그 항구에서 포경선이 자취를 감췄다.

“저기 뵈는 저 자리가 바로, 잡아온 고래를 해체하는 해체장이었어. 지금은 대규모 조선소가 들어앉았지만…. 고래를 잡아다 해체장에 끌어올려 놓으면 거짓말 쪼매 보태서 동네 야산만 했어. 다섯 명이 큰 칼을 쥐고 올라가서 해체를 했는데…어떤 놈은 해체하는 데에 꼬박 하루가 걸리기도 했지. 그땐 인심 참 좋았어. 아주머니들이 해체장에 가면 양푼에다 고기 한 덩이를 그냥 주기도 했어. 동내 개도 고래 고기 덩어리를 물고 댕겼다니까.”

고래포획이 금지된 이래 장생포가 활기를 잃었노라고 주민들은 입을 모았다. 실제로 고래잡이가 금지되기 직전이던 1985년도에는 1만5천명의 주민이 모여 살았고, 고래 고기를 파는 음식점만 40군데나 됐었는데, 2001년도에는 인구가 2천3백여 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래서 장생포 사람들은, 지나가는 개도 고래 고기를 물고 다니던 그 시절을 못내 그리워한다.

이제 나도 왕년의 포경선원의 이야기를 좇아, 검푸른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를 잡으러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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