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아이 좋아라, 여성농민 바우처 사업

  • 입력 2017.04.28 10:33
  • 수정 2017.04.28 10:48
  • 기자명 구점숙 (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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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점숙 (경남 남해)

바우처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우리말로 상품권이라는 뜻이랍니다. 상품권은 현금과 달라서 특정한 분야에만 쓰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따라서 바우처 사업의 성격과 대상에 따라 사용용도가 정해지는 것이겠지요. 그 동안에는 주로 산모나 장애인, 저소득층 청소년 등 사회 서비스를 받아야 되는 계층의 사람에게 지원되던 사업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작년부터 여성농민에게도 시행되기 시작했고 올해는 전국적으로 확대가 되고 있습니다. 경남의 경우 20세에서 65세의 여성농민들에게 교육, 의료, 문화, 레져 등의 분야에 쓸 수 있도록 연 자부담 2만원이 포함된 10만원을 지원합니다. 65세까지 지원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충북은 현실적으로 계산해서 73세까지 지원을 한답니다. 암요. 실제 영농에 종사하는 분들의 연배는 그것이 더 정확한 셈이니까요. 금액도 충남은 15만원이고 경기는 20만원이라 하지요. 아래지방으로 내려올수록 지원규모가 작아지는 것을 보니 서울에서 멀면 지원규모도 작아지나 봅니다. 세금은 똑같이 내는 데 말이지요. 말하자면 중앙정부가 나서서 지원을 하는 것이 아니고 지방자치단체에서 먼저 시행을 하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의 재정현실에 맞추거나 단체장의 여성농민에 대한 철학의 차이에 기인하겠지요.

지난 2월 초, 마을 이장님들께 여성농업인 바우처 사업 신청을 받으라고 공문이 전달됐을 때만 해도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처음 시행되는 사업의 경우, 사업의 목적과 과정에 대한 얘기도 명쾌하게 했어야하나 추측컨대 공문만 내려온 듯합니다. 그러니 때맞춰 방송을 하는 이장님도 계시고 안 하는 이장님도 계셨던 것이지요. 이장을 하는 남편의 공문을 접수한 나는 신나서 여기저기 아는 언니들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이장님이 방송하시면 신청서를 받아서 꼭 신청하시라고, 공연을 보러가도 되고 파마해도 되고 헬스장에 가도 되니까 놓치지 말라고 했습니다. 매월 10만원도 아니고 연 10만원에 자부담 20%나 되니 그 까짓 것으로 뭘 하겠냐고 투덜거리는 사람, 오래살고 볼 일이라며 여성농민에게 지원하는 것도 다 있냐고 하는 사람, 소득을 증빙할 의료보험증 사본을 제출하려니 귀찮다고 하는 사람 등 반응은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얼마 전 여성농민 바우처 신청자격심의회의에 들어갔더니 신청자가 적어서 6월 말까지 연장하고 의료보험증 사본 제출도 없앴다고 합니다.

요즘에는 대부분 줄어들었거나 없어졌지만 농촌총각 국제결혼을 지원하는 지자체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여성농민들의 반응은 거의 격앙수준이었습니다. 농촌이 얼마나 살기가 어려우면 처녀들이 시집을 안 오겠냐고, 농촌여건을 좋게 해주거나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농사를 짓는 우리들에게도 고생한다고 격려를 해야지 뜬금없이 국제결혼자에 대한 지원은 무엇이냐고 했던 것입니다. 암만요, 옳은 지적이지요.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또 가장 어려운 일을 하러 오는 그 친구들이야 그렇다 쳐도 여성농민으로 살아가는데 대한 그 고단함을 사회적으로 인정하지도 않는 분위기에서 뒷감당은 않고 떡하니 결혼만 목적으로 하는 정책에 분노할 수밖에요.

쓰는 사람 입장에서 10만원은 참 작은 돈이지요. 큰 미용실 한 번 다녀오는 값일 뿐이고 좋아하는 가수 공연을 보려 해도 구석진 자리에서 볼 수밖에 없고 집 나서서 여행하려면 하루숙박비도 모자라는 약소한 금액입니다. 하지만 여성농민이라고 누군가로부터 인정받는 일, 처음 있는 일이지요. 여성농업인육성법은 있지만 여전히 농정담당자들의 머릿속에는 여성농민이 주요한 정책파트너라는 인식이 없습니다. 있더라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대로 감을 잡고 있지 않지요. 그런 의미에서 모든 여성농민에게 지급되는 여성농민 바우처 사업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 복지영역에 대한 지원으로 시작해서 궁극적으로는 여성농민을 생산자의 지위에 정확히 올려놓는 일이지요. 이제 시작입니다. 지자체에서 먼저 시행됐다는 말은 지자체에서는 여성농민의 중요성과 그 가치를 알게 됐다는 것이겠지요? 그럼 이제 중앙정부가 움직일 일만 남았습니다. 여성농민, 말하자면 온갖 어려움에도 식량을 생산하는 하늘같은 사람들을 진심 귀히 볼 줄 아는 매의 눈을 가진 그런 지도자를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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