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부스럼’ 같던 시절에 이명래가 있었다 

  • 입력 2017.04.23 23:11
  • 수정 2017.04.23 23:13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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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이명래는 사별한 첫 부인과의 사이에 딸 하나를 두었고, 두 번째 부인에게서도 딸만 둘을 얻었다. 아들도 둘을 낳았으나 모두 어려서 잃고 말았다. 그는 생전에 첫 사위와 둘째 사위를 보았는데, 그의 둘째 사위가 바로 1936년에 보성전문 법과를 졸업한 이광진이었다. 이명래는 이광진에게 중림동의 고약집 근방에다 살림을 차려 주면서 고약제조법과 치료법을 가르쳤다. 법률가의 꿈을 포기하고 다시 지금의 경희대 한의대의 전신인 동양의약대학을 나온 이광진은, 뒷날 자신의 사위에게 고약 제조법과 치료법을 전수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내가 2003년에 충정로의 ‘명래한의원’에서 만나 취재했던 임재형 한의사다. 그러니까 임씨는 이명래의 사위의 사위가 되는 셈이다. 
 
 사위 이광진이 이명래로부터 고약 제조법과 치료법을 전수받고 있던 1930년대 말의 어느 날 일본군 육군 대좌, 즉 대령 계급장을 단 군인 한 사람이 중림동의 ‘이명래고약집’을 찾아왔다. 사사키라는 그 장교는 뒷목 언저리에 꽤 심각한 종기를 달고 있었다. 

 “우리 일본에서는 ‘목에 발찌가 나면 아예 관을 짜놓고 병치레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발 나 좀 살려주시오.”
 “쯧쯧쯧, 손을 탔구먼. 손독이 올랐어.”

 이명래가 혀를 찼다. 종기를 충분히 숙성시킨 다음에 고름을 짜내야 하는데 초기 단계에서 무리하게 짜내려고 해서 염증이 더 심해졌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명래는 그 일본군 간부의 악성종기를 결국 완치하였다. 얼마 뒤 사사키는 총독부 기관지였던 경성일보에 이런 내용의 글을 기고하였다. 

 -나는 이명래고약집에서 세 번 놀랐다. 첫째로는 명색 진료를 한다는 집이 매우 불결한 데에 놀랐고, 치료비가 아주 저렴하다는 데에 두 번째로 놀랐으며, 기막히게 잘 낫는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이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 이명래고약집은 조선 사람들뿐 아니라 일본인들에게도 그 명성이 자자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장안의 명의로 소문난 이명래가 당시에 의생면허도 없었고, 돈만 내면 얻을 수 있었던 약종상 면허도 없이 무면허로 고약을 만들고 진료를 했다는 것이다. 그 시기에 위생 감시 업무는 경찰이 맡았는데, 걸핏하면 사위인 이광진이 경찰서에 불려 다니며 벌금을 물거나 뒷돈을 건네 무마하기도 했다. 그 사정을 간파한 사사키 대좌가 고약집 면허를 낼 수 있게 주선하겠다는 뜻을 전해왔다. 하지만 이명래는 단호히 거절하였다. 

 “내가 총독부에서 발급하는 면허증을 받을 거면 진즉에 받았을 것이다. 일없다고 해라!”

 그렇게 버티다가 해방 후 미군정이 들어섰을 때, 이명래는 군정청으로부터 비로소 의생면허증을 받았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1944년에 이명래는 총독부의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중림동 시대를 마감하고 친척들이 살고 있던 경기도 가평군 사정리로 고약집을 옮겨갔다가, 이듬해 해방이 되자 서울로 돌아와 ‘애오개’라 불리던 지금의 충정로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에서도 전국에서 환자가 밀려드는 바람에  고약집 앞은 새벽이고 밤중이고 늘 장사진을 이뤘다. 

 6.25가 터졌다. 이명래 일가는 피란을 가지 못 하고 서울에 머물렀다가 9.28 수복을 맞았다. 그런데, 서울 탈환을 위해 아군이 한강 건너에서 쏘아댄 포탄 중 한 발이 둘째 사위인 이광진의 집에 직격으로 떨어졌고, 잠깐 외출을 했던 사위 이광진을 제외한 둘째딸과 외손녀들이 모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1952년 1월 6일, 평택의 한 마을에서 잔뜩 술에 취해 들어온 이명래는 저녁에 자리에 누운 뒤, 그대로 긴 잠에 들었다. 프랑스 선교사에게서 전수받은 비법으로 고약이라는 부스럼 치료약을 만들어서, 몸뚱어리가 전 재산이나 한가지였던 가난한 서민대중들로 하여금, 피부질환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던 그는, <이명래고약>이라는 이름을 남겨두고서 세상을 떠난 것이다. 물론 지금은 그마저 전설이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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