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혹’ 하르방

  • 입력 2017.04.23 10:47
  • 수정 2017.04.26 17:46
  • 기자명 부석희(제주시 구좌읍)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석희(제주시 구좌읍)]

부석희(제주시 구좌읍)

나에게 찾아와 마을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면 꼭 들러보는 곳이 있다. 넓적바위 하나를 차지해서 팬티만 입고 누워 있어도 지나는 사람 없어 부끄럽지 않던 바닷가는, 해안도로가 생기고 렌터카가 주인행세를 한다.

아무 때나 훌렁 벗고 바닷물에 뛰어들기 좋아하는 나는 이제 몰상식한 사람이 돼 버렸다. 그래서 풍광 좋은 바닷가는 미뤄두고 마을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내 머릿속에 있는 지도를 꺼내서 가다보면 올망졸망한 돌담길, 흙길, 모랫길도 밟아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길 끝집에 ‘혹하르방’이 살았었다. 초가는 내려앉아 있는데 높은 돌담과 올레어귀에 버티고 선 오래된 팽나무는 우리에게 선뜻 마당을 내주지 않는다. 아마도 어린 날의 기억 때문이리라. 집을 나선 ‘혹하르방’은 늘 동네 사람들이 많은 삼거리 돌담을 지키고 서 있었다. 그리고 눈만 마주치면 ‘혹’하고 소리를 내질렀다. 장난이 심한 아이들은 ‘혹’하면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된다. 술주정을 하거나 다투는 사람이 보이면 쫓아다니면서 ‘혹’, ‘혹’ 해대니 우리 동네 사람들은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르고 입을 닫고 피해 다녀야만 했다. 멀리서라도 ‘혹’하는 소리가 들리면 나도 모르게 잘못한 일들을 찾게 된다. 우리 할머니는 “‘혹하르방’은 누가 착한지 못된 사람인지 다 아는 사람이여. 조심행 댕기라”고 늘 말한 기억이 난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는 세상 일 많고 말도 참 많은 사람이 돼 버렸다. 잠깐 누구 만난다면 반나절 말 팔다가 매번 아내 휴대전화에서 ‘혹’하는 소리가 들려야 정신 차리고 바쁜 일을 해 나간다.

제주에서 농사일은 해를 넘겨 겨울이 지나서야 겨우 마무리되고, 잠깐 숨고르기를 하고 나면 너무 눈이 부셔 일만 하기는 아까운 4월을 맞게 된다. 유채꽃만이 아니다. 그 꽃 위로 벚꽃까지 난리다. 찾는 이들도 많고 먹고 놀 일도 많아 내가 농사꾼인지 한량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하지만 싸한 별빛이 드는 저녁이 되면 어찌할 수 없는 슬픔과 안타까움을 맞게 되는 4월이다.

3년 전 가라앉은 세월호가 올려지고 어처구니없게 죽어가던 어린 학생들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올림머리를 헝클어뜨린 대통령이라는 박근혜의 얼굴과 팬티바람으로 구명보트에 올라탄 선장의 모습도 겹쳐서 그려진다. 그리고 오늘밤 ‘혹하르방’이 그립다. 세월호 갑판에 ‘혹하르방’이 있었다면, 청와대에 ‘혹’하고 소리쳐 줄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이처럼 가슴 아프게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자식 목숨 값으로 한 몫 챙기려 한다느니, 종북이니, 좌파니… 아이고! 이젠 지겹지도 않소. 그리도 자신 있게 할 말들이 없소. 에이 ‘혹’.

내일은 용기를 내서 혹하르방네 마당에 술이라도 뿌리고 와야겠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