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40대 여성농민, 힘내라

  • 입력 2017.04.21 15:23
  • 수정 2017.04.21 15:26
  • 기자명 구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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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40대 농민의 유무가 농업의 지속가능성과 확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측도라고 스스로 규정해 보았습니다. 게다가 40대 여성농민은 가부장적인 농촌문화 탓에 더더욱 생활하기가 어렵다고도 했습니다. 간혹 귀농자들 중에서도 부부가 같이 농사를 짓는 경우는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농업기반이 덜 갖춰진 탓에 부부가 전업할 규모의 농사가 안 되는 까닭도 있고 또는 당장의 현금 유동성을 위해 한쪽은 다른 부업으로 소득을 창출하려는 까닭이겠지요. 또 귀촌을 꿈꾸는 출향민들도 귀촌을 선언한지는 좀 됐지만 서둘러 감행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는 경우도 봅니다. 내막을 들어보면 십중팔구 아내가 선뜻 결심하지 못하는 까닭이 대부분입니다. 눈에 보이는 시골생활의 낭만과 여유와 달리 현실은 갑갑하고 막막하고 답답한 것이 많다는 것인 셈이지요.

그러니 필자를 빼고서 우리 면지역에 단 한 명 있는 전업 40대 여성농민을 사랑할 수밖에요. 못하는 일이 없습니다. 축산업을 하는 그녀는 축사관리며 사료작물의 파종과 관리, 수확 등 거의 모든 일을 척척해냅니다. 봄가을 두 번의 수확과 파종을 하는 시기에는 물론이고 여름과 겨울에도 생활에 도움이 도리 자그마한 농사, 가령 여름 고추나 겨울 시금치 등등을 심으며 1년을 하루같이 살아냅니다. 그 자그마한 체구에도 그 큰 트랙터를 척척 몰며 빈틈없이 일을 한다고들 합니다. 사실 이 표현은 어른들의 표현입니다. 덩치 큰 기계일수록 조작이 수월하고 안전성이 높잖아요. 정작 조그마한 관리기를 조작하는데 힘이 더 많이 들어가고 위험하기도 하니까요. 암튼 작은 덩치에도 남편과 손 맞춰, 때로는 남편을 능가하며 농사일을 잘도 해냅니다. 

그런 그녀가 아주 가끔 우울해 합니다. 말 안 해도 알 듯 합니다. 시어머니와 시동생과 함께 생활하니까요. 아직 젊은 시어머니는 당신의 삶의 방식에 대해 고집하실 테지요. 착하지만 어쨌거나 생활과 요구를 들어줘야 하는 시동생도 가볍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아주 가끔 만나 차나 맥주를 마시며 시어머니랑 같이 사는 내 사정을 빗대어 더 흥분해서 열변을 토하는 것으로 대부분 마무리하며 속을 풉니다. 만약 그 삶의 방식이 매 순간 그녀의 선택과 개입으로 이루어진 결과라면 그녀는 그렇게 힘들어하지 않을 것입니다. 일 자체가 힘들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일이 꾸며지는 과정에 본인의 선택영역은 좁고 남편과 다른 가족들의 주장이 반영되기 때문이겠지요. 그런 그녀에게 한국 농업의 전망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뜬구름 잡는 소리일 뿐이겠지요.

굳이 그 젊은 친구의 이야기를 길게 늘어뜨리며 쓰는 까닭은 이것이 농촌에서 생활하는 젊은이의 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아, 다른 이야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젊은 부부가 비닐하우스 농사일을 늘여서는 외국인 노동자 부부를 고용한 이야기, 그 임금을 감당하기 어려워 여름에도 하우스 일을 하며 비지땀을 흘린다거나 공사판에 일하러 간다는 이야기 등 참 기가 막힌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세상살이가 저마다의 무게가 있기 마련이고 그 곤란함을 헤쳐 나가며 살아가는 것이 곧 인생이라고들 하지만, 농사일과 그 주변의 일을 감당하는 젊은 농민들에게 이 삶은 한없이 무거운 것일 수밖에요. 더는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없거니와 그 안에서도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버거움이 있습니다.

뜻하지 않게 조금 일찍 다가온 대통령 선거에 온갖 주제들이 회자됩니다. 내 삶과 한참은 동떨어진 정치이지만, 그래도 정책들 면면들이 살펴보면 우리 시대에 우리의 바람이 무엇인지 역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40대 그녀가 여성농민이어서 너무 행복하다는 비명이 절로 나오도록 농업정책이 확, 아니 조금이라도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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