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시어머니의 팔순

  • 입력 2017.04.15 13:40
  • 수정 2017.04.15 13:43
  • 기자명 구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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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점숙 (경남 남해)

시어머니께서 음력 8월생이신지라 생일까지는 한참이 남았지만, 일철이나 더운 철을 피해서 지난주에 팔순잔치를 했습니다. 팔순잔치라 해봤자 마을 분들께 점심 한 끼 대접하는 정도에 그쳤지만 그 과정에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팔십 평생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것인지. 또 삶의 전 과정에 얼마만큼 힘든 시간을 겪어 온 것인지. 어려운 고비를 넘길 때마다 성장하는 스스로에게 얼마나 충만했을지 정확하게 가늠하기가 어렵습니다. 모르긴 해도 추측컨대 삶의 마디마디에 고통과 보람과 깨달음이 교차했을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극도로 단순해진 노년의 삶의 양식이 어디서나 조화로울 수 있는 것이겠지요. 대부분의 어른들이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덕담 한마디에도 지혜가 속속 베여서는 듣는 이로 하여금 온기를 느끼게 합니다. 딱 거기까지이지만요.

어장집 딸로 태어나 산골 장남에게 시집온 까닭에 고생이 많았을 것입니다. 시집온 지 3년 만에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담을 사이에 두고 네 분의 시숙모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힘이 들었다 합니다. 오죽하면 시숙모를 여포의 창날과 같다고들 하겠습니까. 아무리 엄한 시어머니여도 자식을 대하는 부모마음과 조카며느리를 대하는 숙모들과는 달랐겠지요. 그 틈에서 잘 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며 살았을 것입니다. 삶에 대한 긴장감을 더하게 느꼈겠지요. 가끔 남편의 경직성에서 어머니를 읽습니다. 지나치게 반듯하게 생활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종종 보이니까요.

결혼해서 처음 남편이 붉은 고추를 씻었을 때, 어머니께서는 마누라 길을 잘못 들인다고 노골적으로 싫어하셨습니다. 남자가 할 일과 여자가 할 일이 다르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니, 실은 어머니께서 밭일을 할 때는 손끝도 안 움직이던 아들에게 서운한 마음이 더 컸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고부간의 갈등이 한참을 갔습니다. 친정아버지 제사에 매번 가는 것에도 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때는 참 서운했습니다. 어머니 마음 속 이면의 언어를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랑 친해지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단정을 했습니다.

드라마에서 보듯 고부갈등과 그 해소과정이 좀 뻔하기도 하지만, 특별한 비결은 없습니다. 가까이에서 스스로의 삶에 충실하고자 노력하면서 부딪히고 그러다가 서로를 이해하게 된 것이겠지요. 아직 당신의 삶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나를 다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무리인 줄은 알지만, 그래도 팔십 평생 한결같이 가정생활에 충실하고 농사를 지으며 마을의 일원으로 제 몫을 다하며 살아오신 당신의 삶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당신과 함께 해온 이웃의 삶 또한 존경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웃 분들께 당신의 팔순을 함께 나누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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