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돈장사 재밌나?

  • 입력 2017.04.09 13:14
  • 수정 2017.04.09 13:18
  • 기자명 김순재 전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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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악의적이지 않아도 조합장을 하면서 듣기 거북한 이야기 중 하나가 “농협이 돈장사만 하는거 아니냐?”였다. ‘장사를 한다’는 말도 듣기에 따라 거북한 어감인데, ‘농협이 돈장사를 한다’고 하니깐 상당히 비꼬는 느낌도 들고 듣는 순간순간 기분도 좋지 않았다.

‘농협이 농민에게 돈장사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돈장사의 중요성을 바르게 인식하고 협동조합의 돈장사가 얼마나 중요한지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습관적으로 부정적인 현상은 풀어서 재해석 하는 버릇이 있는데 주변에서 비아냥거리는 투로 ‘농협이 돈장사나 하고’ 하니 그 ‘돈장사나 한다’는 사업을 정리해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자주했다.

‘농협이 돈장사하는 거 빼고 하는기 뭐가 있노?’

조합장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는 시기였을 때다. 지금도 나이가 칠십이 안 되신 분인데, 아침 일찍 집으로 전화가 왔다. 성실하신 분이고, 옆 동네고 농촌지역이니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그 분은 매우 조심스럽게 ‘돈이 좀 필요해서 그러는데 농협에서 돈을 빌릴 수가 있는지?’를 물어왔다. 돈을 좀 빌릴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간곡히 이야기 하시기에 출근하며 사무실로 오시라고 하여 만났다.

그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개가 갸우뚱 거려진 것은 조합장을 하기 전부터 이리저리 농협에서 돈을 빌린 경험으로 볼 때, 아무 문제가 없는 대출을 아주 힘들게 표현하면서 대출을 청하는 것이었다. 대출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고 여신업무를 담당하는 직원과 이자율에 대한 이야기를 마쳤다.

그리고 ‘필요하다는 날에 통장으로 돈이 들어 갈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 있거나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습니다’라고 인사드리고 배웅을 하는데, 그 분이 약간 구석진 곳으로 내 옷소매를 잡고 끄셨다. 그리고는 내게 5만원짜리 지폐 2장을 호주머니에 밀어 넣어 주는 것이었다. 정말 ‘고맙다’면서 담배라도 한 갑 사 피우라는 말씀을 하셨다.

순간 우습기도 하면서 당황했다. 돈을 돌려 드리며 이 분에게 무엇인가 안정이 필요할 거 같아서 조합장실로 모시고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좀 나눴다. 돈을 빌리기에는 담보물건도 충분하고, 소소한 예금들도 농협에 있어 수천만 원 정도의 대출을 실행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남(농협)에게 돈을 빌리는 일이 처음이다 보니 많이 낯설어서 그랬던 것 같았다. 농협에서 자주 돈을 빌리고 갚고 했던 나로서는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나온 흐름을 잊고 지금 나타나는 현상만 보지만 농협은 ‘예금’으로 다른 사람의 돈을 받아 두기도 하고 ‘대출’로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빌려주기도 한다. 이걸 쉽게 그냥 돈장사라고 이야기하지만 이 흐름을 살펴보면서 농협의 상호금융을 이해해 볼 필요가 있다.

농협 입장에서 듣기 거북한 ‘돈장사나 하는’ 농협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선 조합원의 관심도가 높아진 경제사업 비중의 확장과 조합원들이 농협금융을 이용하며 부담하는 이자수수료를 더욱 낮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개인 간의 돈거래 비중이 높았던 농촌

1970년대는 농협이 생기고 10년이 지난 시기였지만 우리 사회는 개인 간의 금융거래가 많았던 것 같다. 농촌에 살았던 내 기억 속에도 3부이자, 2부이자의 이야기를 들은 기억들이 남아 있다. 70년대 농촌지역에서 농민 간에 돈을 빌리고, 빌려줄 때 ‘이자를 3부로 한다’고 하면 100만원을 빌릴 때 월 3만원의 이자를 주는 것으로 약속한 것이고 연간으로 환산하면 이자율이 36%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이자를 2부로 한다’는 것은 100만 원에 월 이자가 2만원이니까 연 24% 이자를 지급해야 하는 것이었다. 돈의 융통이 어려운이들은 연 30%의 이자를 주고 돈을 빌려 쓰는지 텔레비전에서는 위와 같은 금리로 돈을 빌려준다고 광고를 하지만 70년대 농촌에선 이와 같은 돈거래가 개인 간에 많이 이뤄졌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 농협이 생기기 전이나 농협이 생긴 후에도 농촌지역에서는 개인 간의 돈거래가 굉장히 많았던 것 같다. 농협이 생기고도 농민들은 여윳돈을 남(농협)에게 맡기는 일이 낯설었고, 필요했던 돈을 이웃에게 빌려 융통한 일들은 매우 오랫동안 이어져 온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모양이다.

앞서 언급한 농민은 ‘빚지고 살지 말라’는 부모의 의견을 좇아 한 번도 남에게 돈을 빌린 적이 없고,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농협에 맡기는 아주 근검한 생활을 이어왔다. 하지만 도회지에 나간 아들이 집을 산다니깐 빚을 내서라도 좀 보태고자 했던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한 번도 빌려본 적이 없는 남의 돈을 구하기 위해 논을 저당 설정해 융통하고자 했지만 그 분에게는 해보지 않은 낯선 일이었다.

옆 동네 아는 사람이 농협의 조합장을 한다니, 부탁하면 들어 줄 것으로 생각하고 아침 일찍 전화하고, 대출이 확정되자 감사의 표시로 사례를 하고 싶어서 내게 돈을 주었던 것 같았다. 남(?)에게 돈 빌리는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서 밤새 마음 조렸을 그 분을 생각하면 지금도 씁쓸하고 약간 우습기도 하다. 담보물도 충분하고 절차만 진행하면 되는 것이었지만 그 분에게는 돈을 남에게 융통하는 일이 매우 낯선 일이었던 것이다.

지금 대다수의 농촌구성원들이 농협에서 돈을 융통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대출 조건만 된다면 돈을 빌리는 금리-이자율이 중요한 문제지만 돈 자체를 빌려본 적이 없는 분들에게는 금리 문제보다 대출이 되는가 안 되는가가 중요한 문제였기에 그 분은 그랬던 것 같았다. 비꼬는 사람들이 ‘돈장사나 한다’는 농협 측에서 볼 때 그 분은 소유한 담보물도 충분하고, 신용도도 나쁘지 않았지만 대출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대출 금리 ‘0.0%’ 보다 돈이 ‘빌려지는가 빌려지지 않는가’가 오로지 중요한 문제였고 조바심 나는 문제였다.

돈장사도 판매할 돈이 있어야

장사를 하려면, 판매할 물건이 있어야 한다. 돈장사를 하려면, 판매할 돈이 있어야 하고 농협이 돈장사를 하려면 1차적으로 순자기자본인 출자금이라는 기본 밑천이 있어야 한다. 출자금을 기초로 돈장사 준비를 했으면 실질적인 장사를 위해 농협은 외상으로 예금을 받는다.

외상으로 예금을 받는다는 표현이 이상하게 보일지라도, 남에게 줄 돈이 있다는 것이 외상이고 빚이다. 일상적인 외상과 달리 농협의 외상금인 예금은 고객이 요구하면 언제든지 내줘야하기 때문에 약정한 외상도 있지만 좀 특이한 외상이라고 봐야한다.

그러니까 농협의 돈장사는 이자를 주기로 하고 외상으로 예금을 받아서 그 외상금을 기초로 (농민)고객들에게 이익을 붙여 외상을 빌려주는 것이다. 농협은 돈장사를 위해 끊임없이 그 물건(예금)을 조달했고 필요한 곳에 그 돈을 빌려주는 은행의 역할을 농촌에서 오랫동안 진행해왔다.

농협의 사업 중에서 경제사업, 지도사업 외에 농촌지역에서 돈이 돌도록 하는 역할은 매우 중요했고 그 사업이 경제사업보다는 좀 쉬웠으니, 그 사업에 치중을 많이 하고 그러다 보니 편하게 앉아서 돈버는, 그러한 내용을 좀 비하해 돈장사나 하는 농협으로 흘러 간 것 같았다.

실제로 돈에 이익을 붙이기로 하고 빌려주지만 그 내용은 생산적인 행위를 하기에 매우 필수적이고 중요한 사업이다. 농협 같은 금융기구가 없고 누군가가 돈장사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 사회가 여전히 사금융-개인 간의 돈거래로 돈이 융통되고 있다면 지금의 구조는 버티지도 못하고 무너졌을 것이다.

농협이 예금을 통하여 돈을 구하고 그 돈에다가 이익을 붙여서 판매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매우 웃기기도 하고 중요한 일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진행돼 온 것이지만 물건이 아니고 돈에다가 이익을 붙인다는 게 정말로 대단한 발상이지 않은가?

현재를 기준으로 대개의 농협은 연 1.5% 정도의 예금 이자를 지급하기로 하고 예금을 받아서 돈을 빌려줄 때는 연 4%의 이자로 빌려 주는 것 같다. 돈을 융통시켜 연 2.5% 정도의 이익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내가 농촌에 농사를 짓기 시작할 무렵인 1990년대의 농협은 추정해 보건데 약 7%의 이자를 주기로 하고 예금을 받아서 약 12%의 이자로 대출을 시행했던 것 같다.

과거의 농협은 7%의 이자를 주기로 하고 돈을 구해서 12%가 넘는 이자를 받았으니 이익률이 5%가 넘었고, 지금은 평균 2.5% 이익을 계산해 돈장사를 하는 것이다. 세월이 지나 농협의 돈장사는 이익률이 박해졌지만 취급하는 액수는 많이 늘어서 농협의 돈장사도 일반은행과의 경쟁으로 인해 박리다매로 흘러간 모양이 됐다.

농산물을 생산하고 그 생산한 농산물을 판매하여 생활하던 농민들이 보기에는 지역에서 돈의 흐름을 장악한 농협이 대단해 보이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을 것이다. 물건에 이익을 붙이는 것이 아니고 돈에 이익을 붙여, 그것도 외상으로 받아 외상으로 판매하는 것이 현장의 일을 중시했던 농민들에게는 대단하기도 하고 접근하기가 힘든 대상이기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쉽게 생각하면 동네 부자한테 돈을 빌려야하는 궁한 사람은 부자에게 허리를 숙일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였을 것이다.

돈의 흐름은 매우 중요하다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들은 오랫동안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 왔다. 이젠 농민들이 농협에 대해 돈장사를 한다고 비꼬는 수준의 비판으로는 농협이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농협더러 돈장사를 한다며 비하할 이유도 사실은 없다.

누군가는 필요한 돈장사를 해야 하고, 농협이 그 일을 농촌지역에서 농민에게 하도록 법을 만들어 시행하도록 한 것은 농민에게 도움이 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농협이 상호금융에 너무 많이 치중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실제로 농협이 전체사업에서 돈장사-상호금융에 치중한 측면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앞서 말했듯이 농협의 금융은 더디지만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흐름과 함께 박리다매로 흘러 왔다. 현재 농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생산자금조달이 가능해졌다. 이젠 자금의 조달여부만이 아니라 대출 금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농가의 경영이익을 위해 농가이익에 직접 기여도가 높은 구매-판매 사업과 같은 농협의 경제사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는 당연한 일이다. 과거와 달리 농민들이 농협의 금융사업을 일정정도는 비판하고 경제사업의 비중을 올릴 것을 협동조합에 요구하고 있는 것은 매우 합당하다.

지금은 일부를 제외하고 대다수의 농협 금융들이 ‘연체율’ 등에서 깨끗해졌지만, IMF 구제금융 시기나 농업이 한창 곤두박질치던 시기에 농경지를 담보물로 제공하고 그 부채를 제대로 갚지 못한 농민들의 경우 상당수가 농협에 의해서 강제로 농경지가 경매 처분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좋은 일은 널리 퍼지지 못해도 안 좋은 소문은 널리 퍼진다고 협동조합의 금융사업이 협동조합 구성원의 자산을 강제로 매각했던 시기의 감정은 종종 대단히 적대적인 감정으로 남아 있을 수도 있다.

농협, 이자부담 더욱 줄여야

연 평균 1.5%의 금리로 예금을 1,000억 가진 농협이 4%의 이자를 받기로 하고 1,000억을 전부 빌려주었다면 농협은 25억의 이자 수익이 생긴다. 4%의 경우는 그러하지만 평균 대출금리를 4.2%로 받기로 했다면 농협은 27억의 이자수익이 발생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돈을 빌려간 고객이 부담해야 한다. 그리고 고객의 대다수는 그 조합의 구성원, 즉 조합원일 가능성이 많다.

앞으로 농협을 이용하는 고객들은 더욱더 이자부담을 줄여 줄 것을 요구할 것이고 지금 농촌지역의 농협들은 그 요구를 들어주기에 부담스러운 지경에 이르고 있으니 지역-품목농협들의 상호금융연합체계 구성은 불가피할 것이다. 당분간은 버틸지 몰라도 농업금융연합회로 체질을 바꿔가지 않으면 농협금융은 상대적으로 어려워질 것이다. 농협금융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금융들은 예대마진을 줄이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

‘돈장사나 하는’ 농협이 아니라, 돈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여 생산자 농민들에게 기여한다는 이미지를 심기위한 노력들을 해야 한다. 좋은 인식은 오래, 멀리가지 못해도 안 좋은 소문과 인식은 쉽게 퍼지고 멀리 가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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