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떠난 이에게 호소해 봅니다

  • 입력 2017.04.09 10:49
  • 수정 2017.04.09 10:53
  • 기자명 김훈규(경남 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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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규(경남 거창)]

김훈규(경남 거창)

성진이형에게!

비가 오는 그날 형수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마침 49제를 지내고 올라오고 있다더군요. 그러면서도 ‘사과밭에 약을 쳐야 하는데 자꾸 비가 와서 걱정이다’ 라고 이야기 했어요.

형수의 말처럼 형은 참하게 떠났다 하지만, 남은 빈자리는 고스란히 형수의 수고로움이 됐답니다.

큰놈 하나 데리고 거창으로 귀농을 하고, 사과밭과 포도밭을 일구고, 그러다가 튼실한 둘째놈 하나가 더 태어났고, 비오는 날이면 차도 올라가기 힘든 마을 뒤 비포장길 위에 손수 황토로 된 집을 지었죠. 서울에 촛불을 들러 가는 날도 빠지지 않았잖아요. 그 세월의 수고로움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어요.

 

형은 재주가 많아 마을 주민들과 어울릴 때면 예전에 듣지도 보지도 못한 더없이 신명난 풍물놀이를 했고, 형수도 마을의 어르신들과 아이들을 모아 노래를 가르치고 또 함께 부르기를 좋아했어요. 마을의 폐교가 다시 살아나서 불이 켜지는데도 큰 도움을 준 두 분이었잖아요.

형이 떠나는 날, 만약에 도시처럼 가까운 곳에 긴급구조대가 있었다면, 부르면 10분 안에라도 달려올 수 있는 그런 응급시스템이 있었다면, 우리 마을처럼 제법 골짜기에 사는 주민들의 ‘삶의 질’ 이라는 게 얼마나 달라졌을지 생각해 봅니다. 그렇다고 전화를 하고 30분 만에 도착한 소방관들을 탓할 수 없어요. 심장이 멎지 않았음을 확인했는데도 다시 병원으로 달려가는 중에 그 사달이 난 것을 들었을 때는 화가 났어요.

 

꿈이 남달랐던 형수가 이제는 농사를 지어야겠지요. 노래를 만들고 노래를 부르고 연극을 만들고 주민들과, 그리고 아이들과 노래하며 연극을 하고 싶어했던 형수가 온전히 농사만 지어도 그 일을 다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됩니다.

“형이 떠나던 날, 도시처럼 가까운 곳에 119가 있었다면…”

 

우리나라에 ‘농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어촌지역 개발촉진에 관한 특별법’이란게 있나봐요. 이름도 어찌나 긴지 다 외울 수도 없답니다. 그 법에는 농촌에 사는 이유만으로도 그곳의 주민은 충분한 권리를 누릴 수 있어야 하고, 살아가는 삶의 모습 또한 도시민들과 차별을 받지 않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보장해주는 내용들이 꽉 들어차 있어요. 그런데 훌쩍 떠나간 형만큼이나 그 긴 이름의 법령도 밉고 부질없어 보입니다.

생명이 위험한 긴급한 상황에도 제대로 대처할 수 없는 농촌의 열악한 구조, 한 가정의 가장을 잃으면 가족 모두는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형편, 마을과 지역의 도움만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고질적인 농촌의 인력난, 아득하게 먼 아이들의 통학거리, 더구나 농사에만 전념한다고 해도 보장받을 수 없는 1년 농사의 끝.

읍내에서 제법 먼 마을이라 할지라도 전화 한통이면 20분 안에는 도착하는 그런 119가 근처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가장의 빈자리를 메꾸는 어려운 농사일을 제 때에 돕는 그런 농촌의 인력지원제도가 필요하기도 해요. 그래서 농사를 지으면서도 주민들과 연극을 만들고 노래를 하며 마을과 지역의 공동체를 꾸려가는 그런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해요. 아이들이 다닐 학교 하나, 면소재지에 꼭 남겨뒀으면 정말 좋겠어요. 하늘 보고 땅 보고 하염없이 농사를 지으면서도 열매가 맺히는 그 순간, 근심이 아니라 활짝 웃을 수 있는 그런 현실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예요.

 

형! 곧 대통령 선거인가봐요.

정치하는 양반들 정신이 번쩍 들도록 살아서 못 다 두드린 꽹과리 신명나게 두드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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