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이명래 고약 ②] 프랑스 신부가 비법을 전수하다

  • 입력 2017.04.08 23:35
  • 수정 2017.04.08 23:37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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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서민들의 피부질환 치료제인 이명래 고약을 생산 공급해 오던 <명래제약소>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게 됐다. 이명래 고약은 1905년에 프랑스 신부의 비방을 고(故) 이명래 창업주가 제품화하여 근 1세기 동안 장수약품으로 서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는데, 다양하고 편리한 항생제가 등장하고, 해당 제약사가 우수 의약품 제조 관리 기준 등 제약사로서의 면모를 갖추지 못한 탓에 경영난이 가중되어서 생산을 중단하게 된 것이다. 이로서 이명래 고약은 100년 가까이 연명해온 고약의 역사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게 되었으며…

2002년 초에 보도된 이 뉴스는 가난하던 시절, 고약에 대한 이런 저런 추억을 간직하고 있던 나이 든 사람들에게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사실은 이 뉴스가 나오던 때에 100여 년 역사의 이명래 고약의 맥이 아주 끊긴 것이 아니었고, 이명래 고약의 생산이 아예 중단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약국에서 아스피린을 사듯이 구입할 수 있었던 ‘상품으로서의 고약’이 사라진 것뿐이었다.

이명래 고약은 창업자인 이명래가 사망한(1952년) 이래 두 갈래로 그 명맥이 이어져 왔다. 이명래의 둘째 딸 이용재가 1956년에 설립한 <명래제약>은 본래의 성분을 일부 변경하여 대량생산을 해왔었는데 바로 그 <명래제약>이 2002년도에 폐업한 것이다. 또 한 갈래는 이명래의 외손주 사위인 한의사 임재형이 원장으로 있던 <명래한의원>(일명 ‘이명래 고약집’)이다. 이곳에서는 본래 이명래가 만들던 그대로의 제조법으로 고약을 만들어서 찾아온 환자들을 치료해왔다. 물론 전철 충정로역 인근의 골목에 자리하고 있던 그 <명래한의원>도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그 자리에서는 무슨 숯불구이 식당이 영업 중이다.

내가 명래한의원을 찾아가 임재형 원장으로부터 이명래가 처음 고약을 제조하여 사람들을 치료하게 된 내력을 들었던 것은 2003년의 일이다. 내게는 행운이었다,

“이명래 선생은 1890년에 서울 남산동에서 태어났지요. 독실한 천주교 집안이었던 그 가족은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자 한 외국인 신부의 도움으로 충청남도 아산에 있는 어느 성당부근으로 이사를 하게 됐는데, 그 성당에서 성(成)씨라는 우리 성을 쓰고 있던 프랑스 신부를 만나게 되었지요. 그런데…”

당시 선교활동을 하려면 의료지식을 갖추는 것이 필수였다. 그 시기 유럽에서는 옛 희랍으로부터 전승돼온 생약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는데 당시 프랑스 선교사들의 일부가 라틴어로 된 생약 관련 책으로 공부를 한 다음에 중국을 거쳐서 한국에 왔다.

“이봐, 요한! 물 끓었는지 솥뚜껑 좀 열어 보아라!”

“어이구, 기름이 펄펄 끓고 있습니다요.”

“그럼 이번에는 한문책에 나와 있는 처방 중에서 두 번째 약재를 솥에 넣어라. 자, 내가 시계를 줄 테니까 그 약재를 넣고 한 시간 동안 불을 더 땐 다음에 식혀야 돼.”

“예, 신부님. 이번에 한 번 더 끓여서 식히면 고약이 되는 것인가요?”

“아니야. 식혀서 걸러낸 다음에 다른 약재를 또 넣어야 돼.”

성당 뜨락에 솥단지를 걸어놓고 기름을 끓이고 약재를 넣고… 하느라 여념이 없는 이 사람들이 바로 프랑스인 성 신부와 ‘요한’이라는 세례명을 가진 이명래 소년이었다.

성 신부는 한 쪽에는 라틴어로 된 생약처방에 관한 책을 펴놓고, 다른 쪽에는 중국에서 가져온 한방 의서를 펼쳐놓고서 전대미문의 치료약을 시험제조 했던 것이다. 비록 학교에 다니지는 못 했으나 명민했던 이명래는 그 신부 밑에서 심부름도 하고, 선교현장을 따라다니기도 하면서 그에게서 고약 제조법과 치료법을 익혀갔던 것이다. 말하자면 이때 시험 제조했던 그 고약은 동서의학을 결합한 신종 부스럼 치료약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이명래는 의젓한 청년으로 성장했고, 성 신부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의서들이며 치료법 따위를 이명래에게 물려주었다. 이명래는 그 프랑스 신부의 비방대로 고약을 제조하기 시작했다. <이명래 고약>의 시초가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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