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화요일은 우리들의 날

  • 입력 2017.04.08 23:33
  • 수정 2017.04.08 23:35
  • 기자명 김정열 (경북 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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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강마을의 지구는 화요일을 중심으로 돈다. 어김없이 화요일이면 마을 한복판에 자리 잡은 언니네텃밭 공동체 작업장에 언니들이 모여든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을길에서 마주치기도 하고 같은 연배들끼리는 모여서 놀기도 하지만 이렇게 14명 회원 전체가 다 모이는 것은 오늘 화요일이다.

오후 3시 꾸러미를 싣고 갈 택배차가 오기 전에는 소비자들에게 보낼 꾸러미를 싸야 하기 때문에 인사할 틈도 없이 각자 자기자리를 찾아 자리를 잡는다. 언니네텃밭 활동을 시작한지가 9년째이니 누가 말하지 않아도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할지 너무도 잘 안다. 두부, 김치 등을 포장하는 포장기계 앞에 서너 명, 채소들을 다듬고 포장하는 사람 네 댓 명, 소비자들에게 편지 쓰고 송장업무 등 사무업무를 하는 두 명, 또 꾸러미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포장작업인 달걀을 포장하는 조 등으로 나뉜다.

나는 아직 공동체에 복귀한지 얼마 되지 않아 어리버리해 이 곳 저곳 빠진 부분에 불려 다니지만 가장 언니들 팀에 자주 끼여 앉는다. 나이로 보면 젊은 축에 속하지만 채소를 다듬고 일 하면서 어른들과 이야기 하는 것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또 나물을 이용한 반찬 이야기는 얼마나 맛깔나게 하시는지 입에 침이 고일 정도이다. “꽃대 올라온 조선배추를 살짝 데쳐서 된장에 버무려 자글자글 지지면 얼마나 맛나는데.” “거기다가 매운 청량초 다져 넣어야 해.” “아이고 그만해. 배고파.” 오늘도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니 이야기도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같이 나누는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흥분한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높아지는 웃음소리는 고요한 산골마을을 뒤흔든다. “하하하” 웃는 소리에 가까이에서 그 이야기를 듣지 못한 팀들이 소리친다. “같이 웃읍시다!”

오늘 최고의 이야기 거리는 오늘 보내는 쑥과 머위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중 제일 관심사는 내 이야기였다. 지금까지 제대로 물품 한 번 내지 않고 입으로만 살아왔던 내가 이번 주에는 쑥 1.8kg, 삶은 머위 9통을 냈다. 꾸러미를 시작한 이래로 처음이다. 다른 분들 같으면 그 정도 양이면 가소롭지만 나에게는 지난 일주일이 수능을 앞둔 수험생만큼 큰 부담을 가지고 지냈다. 지난 주 물품을 준비하는 회의에서 덜컥 하겠다고 호기롭게 말은 했지만 막상 할 생각을 하니 걱정 때문에 일주일동안 밤에 잠이 안 오더라, 고 고백했더니 회원들이 우스워 죽겠단다.

손으로는 재빠르고도 익숙하게 일을 처리하고 입으로는 연신 그동안 밀린 이야기 하느라 바쁘다. 다른 집은 다 밭 장만해서 감자야 뭐야 심는데 아직도 지난 가을 그대로인 밭을 보고 있느라 썩어 빠진 속을 어른들 앞에 털어 놓으니 속이 후련하다.

매주 화요일 오전 11시부터 만나서 같이 일하고 같이 점심 먹고 같이 회의하고 다음 주를 기약하고 헤어지기를 어느 덧 9년째. 70대이셨던 가장 왕언니 둘은 올해 여든이 되셨다. 그 뒤로 70대 60대 언니들과 함께 우리 모두가 세월을 같이 맞는다. 그 긴 시간동안 기뻤던 일, 슬펐던 일, 좋았던 일, 속상했던 일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함께였기에 더 아름다운 나날들, 그 세월. 우리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그 때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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