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농사꾼 보호 프로젝트

  • 입력 2017.03.31 13:53
  • 수정 2017.03.31 14:28
  • 기자명 구점숙(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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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점숙씨(경남 남해)

 경험만한 훌륭한 선생이 없다는 말은 농업에서 더 빛이 납니다. 걸음조차 시원찮은 어르신들이 짓는 농사가 젊은 농민들의 생산을 훌쩍 뛰어넘는 모습은 흔히 봐 왔습니다. 텃밭 농사를 지을 때에도 주변 어른들을 따라하노라면 실패할 확률이 훨씬 줄어듭니다. 그럼에도 농사에서 40대 농민들을 눈여겨 봐야한다는 생각이 거듭 듭니다.

   40대가 농업에서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나의 시각으로 딱 2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자녀 교육비가 월등하게 많이 지출되는 시기이기에 교육비를 포함한 제반 생활비를 농업소득으로 감당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입니다. 조기교육이나 사교육이 어떻다 해도 매우 잘 사는 사람들 말고는 그 부담이 중고등학생을 넘어 대학교육비만큼은 아닐 것입니다.

주변에서도 재촌탈농, 즉 부부 중 한 사람만 농사를 담당하고 한 사람은 다른 일거리를 찾아 나서는 시기가 이 시기인 경우가 많습니다. 아니, 요즘의 젊은 농민들은 부부가 애초에 직업을 달리 하며 살림을 시작합니다. 어쨌거나 40대의 농업소득으로 농비나 생활비 전반을 감당할 수 있을 때에 40대가 농사를 지어낸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40대 전업농 상황이 농가경제의 실질적 측도가 된다는 것이고 이는 농업의 미래를 그려내는 측도라는 것이지요. 농업소득이 퇴행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도 그나마 농업이 지탱되는 이유는 지출이 확 줄어든 60~70대 고령의 농민들이 소비를 최소화하며 지탱해내는 것이 지금의 농사구조라는 것이지요. 

둘째는 새로운 농업정책을 시도할 수 있는 마지노선 연배가 된다는 것이지요. 공업이나 상업에서도 업종 간 변경은 쉽지 않으나, 농업은 차원이 다릅니다. 감농사를 짓던 사람이 배농사를 지어 소득을 제대로 내려면 족히 7~8년은 걸립니다. 노지작물을 재배하던 사람이 시설원예로 전환하려했을 때 그 기반 마련에 있어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그나마도 그 많은 부담을 감당해내며 투자를 과감히 할 수 있는 세대가 바로 40대까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성농민의 입장에서 보자면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40대 여성농민은 농촌지역 사회에서 아직은 비주류 세대이므로 가정에서나 마을에서 여전히 시집살이를 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텃밭의 잡초도 말거리가 되고, 마실을 가는 것도 말을 듣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이야 고맙지만 관심의 범주가 워낙 좁다보니 젊은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훑어냅니다. 이 부분에서 많은 젊은 여성농민들은 농촌에서 사는데 많은 부담을 느끼는 것이지요.

그 시절을 넘기고서야 비로소 발언권도 높아지고 행동규약도 자유로워집니다. 사실 가부장제 사회는 남녀 간의 차별이 주가 아니라 힘이 센 자와 약 자 사이의 문제가 주가 됩니다. 때문에 여성이라 할지라도 산전수전 다 겪고서 실질적인 권한을 쥐는 연배가 되면 살만한 세상이라고 합니다. 삶이란 것은 누구나 힘든 것이고 어려운 시절을 참아내면 끝에는 살만하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힘이 없는 어린 여성들은 물론이거니와 가난한 이들, 장애를 가진 이 등 사회적 약자들은 온갖 상처를 받아 제대로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알고 보면 몇몇을 빼면 대부분이 사회적 약자인 조건에서 힘 있는 누군가로부터 멸시당하고 소외당하는 것이 전통적인 가부장 사회입니다. 그런 풍토에서는 누구라도 풍부한 경험과 지혜를 겸비하여 후배들을 자상하게 안내하는 여유로운 어른이 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누구나 뒷말을 듣는, 알고 보면 마음속 깊은 곳에 상처투성이의 어른아이가 아직도 삶을 두려워하고 있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비교적 젊은 여성농민들은 농촌에서 생활하는 것이 그냥 힘이 든 것입니다. 개명된 세상에서도 여전히 말입니다.  

내가 사는 고장에 아직 40대가 전업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면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없다면 조금 우울한 상황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요. 이제 젊은 농사꾼은 경쟁자가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보호받고 장려 받아야 할 보호대상자가 되고 있습니다. 농업의 대를 이어갈 후대이므로 무턱대고 격려하기, 무턱대고 칭찬하기, 무턱대고 안내해야 하겠네요. 누가? 그 절실함을 아는 이로부터 시작하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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