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 입력 2017.03.31 11:40
  • 수정 2017.03.31 13:51
  • 기자명 이춘선 전여농 정책위원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이춘선 정책위원장]
 

오랜만에 겨우내 생명을 부지하던 마늘과 양파를 촉촉이 적셔주는 단비가 내렸다. 농사의 반 이상은 하늘에 달려있다고 했던가? 아무리 열심히 가꾸고 일 년 내내 논밭에 살아도 비가 안 오면 작물이 자라지 않고 병이 오거나 태풍이나 홍수로 한순간에 쑥대밭이 돼 농민들의 애를 태우기도 한다. 이렇듯 농사는 일 년 내내 뼈 빠지게 일해도 수확해서 수중에 돈이 들어와야 올 농사는 어땠는지 이익계산을 할 수 있다.

얼마 전 농업관련 대선농정 공동제안 토론회 참석차 aT센터에 갔다가 양재꽃시장에 들린 적이 있었다. 농민들의 손길을 거쳐서 온 양재꽃시장은 그야말로 생생한 봄을 느낄 수 있었다. 농민입장에서 보면 열심히 씨 뿌리고 가꾸고 꽃을 피우면서 제 값 받고 팔 수 있다면 굉장히 행복하겠지만 소비자는 싸게 살 수 있었다는 것에 큰 행복을 느낀다.

요즘 농촌 장날이나 도시주변 시장에는 많은 꽃들과 종자들이 나온다. 누구나 한번쯤 봄이 되면 그동안 심고 싶었던 나무나 과실수 한 그루쯤은 심을 계획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또한 많은 농민들은 올해 어떤 씨를 뿌려서 농사를 지으면 돈을 벌 수 있을지, 큰 손해 보지는 않을까? 고심하면서 작목을 선정하는 시기이다.

나도 올해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 그동안 심고 싶었던 작물들을 농장주위에 심으려고 과실수, 특용작물 등을 샀다. 지난 가을 마늘, 양파를 심고 남는 땅에는 올 봄 감자도 심었고 상추도 심었고 곧 땅콩과 고추, 가지, 오이 등도 심을 것이다.

예전에 양파농사를 할 때에는 겨우내 양파가 많이 얼어 죽어 빈 구멍이 많고 수확량이 줄어 돈을 벌지 못해서 속상했지만 지금은 빈 구멍에 다른 것을 메꿔서 수확을 해도 되고, 그냥 우리가 먹을 것이기에 남는 것은 나눠먹고 팔 수도 있지만 돈과 상관없으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러고도 남는 자투리땅에는 양재꽃시장에서 샀던 치자나무도 심고 방울사과, 미니사과, 복숭아, 다래, 호두나무, 오미자, 아몬드, 커피나무까지 ‘너무 많이 샀나’ 할 정도로 마음껏 심을 것이다.

옛날 우리 할머니들이 가꾼 텃밭에는 사람 사는 정이 있었다. 조그마한 텃밭에서 나오는 농산물들로 온 가족, 이웃들과 함께 나눠먹고 남으면 장에 나가서 팔던 그 시절은 농산물 가격이 지금처럼 농산물 도매시장과 상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심어서 먹고 남는 것은 이웃과 나눠먹기도 하고 그래도 남으면 장날 장에 나가서 농민들이 가격을 정해서 내놓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농업이 기계화되고 돈 되는 산업으로 바뀌더니 그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농민들도 대기업처럼 그 규모를 점점 더 키우고 있다. 농산물이 수입개방되면서 농비는 많이 들고 인건비는 오르고 농산물 가격은 자꾸 떨어지고 적은 규모로는 생계유지도 힘들다 보니 어느새 농업은 투기가 돼버렸다. 농업을 일구는 것이 아니라 농업을 핑계로 돈의 노예가 돼 매년 작목 선택에 한방을 기대해야 하는 시절이 된 것이다.

작년에 좋았던 청양고추가 올해는 생산비도 못 건지는 상황, 작년까지 엄청 좋았던 마늘 값이 올해는 너무 많이 심어서 가격이 폭락할 것이라는 예상, 마늘에 비해 작황도 안 좋고 모종 대란까지 왔던 양파는 올해 가격이 높을 거라는 등…. 가장 많이 지으면서 우리의 주식인 쌀값 폭락은 밥쌀수입과 정책실패 때문에 발생했음에도 벼 수매가 환수를 고지한 정부. 1,600만 촛불로 대통령이 탄핵되고 5월 9일 조기대선을 치르지만 당선이 유력한 후보 가운데 밥쌀수입중단을 외치는 이가 없으며, 농민농업정책을 어떻게 하겠다는 후보가 보이지 않는다. 농민숫자가 너무 적어서일까? 농업에는 아예 관심도 없는 것일까? 먹고 사는 문제인데!

예로부터 농자는 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했듯 농업은 삶의 근본이며 온 국민을 먹여 살리는 국가의 근본이다. 대선정국에서 많은 후보들이 농업을 제대로 살리고 국가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정책을 수립하기를 촉구해본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