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미래를 위해 착한 마음을 버리자

  • 입력 2017.03.25 14:13
  • 수정 2017.03.25 14:14
  • 기자명 우희종 서울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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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문란이 드러나면서 대통령 탄핵도 마무리되고 여러 후보의 공약이 난무하는 선거철이 됐다. 국민들은 이제 제대로 된 정치가 펼쳐질 수 있다는 희망과 기대 속에 후보들의 모습과 공약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는 상황이 됐다. 대부분 공감하겠지만 한 나라의 지도자가 다양한 구성 집단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회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이해 상충되는 여러 구성 집단 간의 조율과 더불어 사회 발전을 위한 미래 지향적 자세와 의지가 무엇보다 요구된다.

여소야대의 상황도 아니고, 자신이 기반하고 있는 정당의 국회의원들까지 동참하여 많은 의원들의 탄핵 소추가 결정된 불신임 상황에서도 대통령이 자진 사퇴하기는커녕 사회 분열을 초래하면서 국력을 소비시켰고, 이 와중에 급변하는 대외 환경에 힘을 기울이기보다는 혼란스런 내정 회복에 주력해야했다.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라는 형태로 극명히 나타났듯이 분열된 사회다보니 많은 후보들이 화합과 타협을 앞세우는 것은 자연스럽다.

해방 이후의 근대 역사를 돌이켜보면, 해방 직후 전개된 모습도 그렇지만 특히 4.19 의거나 부마사태, 5.18 항쟁 등 국가의 기조를 바로 잡을 상황이 꽃 피우지 못하고 오히려 기득권 세력의 재등장과 강화로 이어진 것을 알 수 있다. 그동안 흘린 피와 눈물과 땀이 오늘 이 촛불로 이어지는 것은 분명하지만, 현실에서 여전히 일제 강점기로부터의 기득권자들이 권력을 잡고 횡포 부릴 수 있었던 것이 이번 탄핵의 결정적 요인이라는 것도 분명하다.

국민 열망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역사와 현실에서 매듭 짓지 못한 채 여전히 기득권 세력은 더욱 배불리고, 사회가 분열되어야 하는 것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생각해야만 한다. 물론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들고 싶은 것은 섣부른 용서와 타협과 화해다. 좋은 것이 좋다는 말이 있듯이 대립과 갈등을 싫어하고 이웃에 모질지 못한 한국인의 심성상 용서하고 화합하려는 그 마음을 우리 모두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용서, 관용, 화쟁, 화합 등의 아름다운 가치가 역사와 오늘의 현실 속에 구체적 결실로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기득권자들에게 유리하게만 마무리되는 것이 반복되는지를 성찰해야만 한다. 잘 생각해보면 너무 쉽게 그런 태도와 자세를 취하는 것이 오만이자, 월권이며 때로는 폭력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회개하거나 참회하지 않는 이나 집단에 대해, 혹은 여전히 악행으로 집단과 사회 고통의 원인이 되는 사람, 집단, 정당, 이념 등에 대해 너무 쉽게 위와 같은 말로 포장하면서 마치 관대한 것처럼 행동하는 자가 있다면, 그러한 거악 집단에 맞서기 두려운 비겁함에 대한 자기합리화거나, 원칙 없이 적당히 자신의 이득을 위한 이해타산 혹은 허울 좋은 말에 빠진 자기도취 중의 하나다.

그런 태도가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성의 수용과 조율이라는 착각을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틀린 것과 다른 것은 구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틀린 것을 다른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어 잘못된 적폐 청산을 어렵게 한다. 용서나 자비는 회개하고 참회하는 자들의 몫이다. 책임질 것을 분명히 하지 않은 채 적당히 덮어주는 것이 마음에 편할지는 몰라도 그 결과는 우리 스스로 받게 됨을 인류 역사가 말해 준다.

아쉽게도 농어민들의 순진한 착함은 과거로부터 정치인들의 다양한 미사여구와 멋진 공약 속에 철저하게 이용당했다. 대선을 앞두고 좋은 것이 좋다는 마음을 버리고 자국의 미래를 위해 식량기반을 확보하면서, 그동안 소외된 계층을 살피는 후보가 누구인지 분명히 살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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