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놀이 ③] 그 겨울, 우리가 날려 보낸 가오리연

  • 입력 2017.03.19 01:39
  • 수정 2017.03.19 02:25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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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식구들이 둘러앉아 아침밥을 먹는다. 다행히 오늘은 꽁보리밥이 아니라 반지기 밥이어서 제법 찰기가 있다. 한 숟가락을 떠서 슬그머니 상 밑으로 내린 다음 조심스레 종이에 싼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연을 만들 것이다.

부모님이 외출하고 나면 본격적으로 연 만들기 작업에 들어간다. 아이들도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연은 물론 꼬리연(가오리연)이다. 재료라야 별 것 아니다. 종이와 대나무가지와 밥풀만 있으면 된다.

시렁 한 구석에서 미리 봐두었던 창호지를 꺼낸다. 문을 바르고 남은 그 창호지는, 설날 차례 지낼 때 지방을 쓰려고 남겨두었다는 사실 쯤 모르는 바 아니나, 나중에 혼날 걱정을 미리 당겨 한다면 그건 어른이지 아이가 아니다. “엄니한테 이른다?” 어쩌고 하는 동생 녀석한테는 도끼눈을 무섭게 한 번 떠 보이면 그만이다.

일단 창호지를 정사각형으로 자른 다음, 한 쪽 대각선을 따라서 대나무를 쪼개 만든 살을 붙인다. 그 다음에는 가늘게 깎은 또 하나의 살을 활처럼 구부려서 양쪽을 밥풀로 붙여 고정하면 연의 얼개가 갖춰진다. 두 개의 연살이 만나는 곳에 노끈의 한 쪽 끝을 묶고, 연의 배꼽 쯤 되는 지점에 다른 쪽 끝을 묶은 뒤, 위아래 길이를 조절하여 얼레의 연줄과 연결하면 된다. 대나무가 귀한 지역에서는 싸리나무로 연살을 삼기도 하고, 도회지에서는 망가진 우산살을 이용하기도 했다.

이십여 센티미터 길이로 자른 종이를 양쪽에 붙여서 귀를 만들고, 그것의 서너 배쯤 되는 길이의 종이를 아래쪽에 붙여 꼬리를 만든다. 자상한 부모를 둔 아이는 오일장에서 사온 나일론 실 한 타래를 얼레에 감아들고 으스대기도 했으나, 그렇지 못 한 아이들은 비료포대에서 풀어낸 실을 더덕더덕 이어서 연실로 삼기도 했다. 어느 해던가, 나는 누나의 스웨터를 풀어서 그 털실로 연을 띄웠다가 아부지한테서 종아리를 열 대나 얻어맞은 기억이 있다.

남녘에서는 얼레를 ‘자새’라 했다. 까짓것 어른들이 안 만들어줘도 된다. 막대기 넷(하나는 좀 더 길어야 한다)을 못질하여 사각형의 틀을 만든 다음, 구멍을 뚫고 철사를 끼우면 된다. 구멍 뚫을 때 뭐 꼭 송곳이 있어야 되는 것도 아니다. 낫에서 자루를 뺀 다음 그 뾰족한 끝으로 돌려 파면 되는데 뭘.

드디어 연을 날릴 차례다. 그런데 바람이 없어서 문제다. 고놈을 공중으로 띄워놓고 마당의 이쪽에서 저쪽 끝으로, 그것도 모자라면 마늘밭 보리밭 할 것 없이 막 달려보지만 그 가오리 녀석은 흐물흐물 가라앉고 만다.

“너, 가서 올려 봐!”

연줄을 한 참 풀어준 다음 동생 녀석에게 저만치 끌고 가서 연을 올리게 한다. 올랐다. 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참 공중으로 오르는가, 했더니 그만 한쪽으로 곤두박질하고 만다. 좌우 균형이 안 맞은 것이다. 주머니에서 밥풀을 꺼내 반대쪽의 귀를 늘여 붙인다. 그래도 안 되면 기우는 쪽의 귀를 조금 잘라내기도 하고, 꼬리를 늘여 붙이기도 하고, 아예 꼬리에다 지푸라기를 묶어 달아서 중심을 잡도록 시도하기도 했다.

방패연을 까마득한 공중에다 높이 띄우고서, 유리가루 풀을 먹인 연줄을 상대 연줄에 마찰하여 끊어먹기 시합을 하고… 그런 건 나이가 한참 많은 형들이나 할 수 있었다.

6학년 올라가던 해 정월 보름 즈음에, 육촌 상철이 형으로부터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이거 너 다 가져!”

형은 나일론 연실이 풍성하게 감긴 자새와, 색칠까지 예쁘게 한 아주 잘 생긴 가오리연을 내게 선물로 주었다. 신이 났다. 형은 내가 연을 띄우는 것을 도와주기까지 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가오리가 하늘 높은 곳에 거의 수직으로 올라가서는 뱅뱅 맴을 돌았다. 공중에 길게 포물선을 그린 연줄을 바라보자니 되감을 일이 걱정되기는 했으나 마냥 행복했다.

“연줄 더 풀어줘! 더, 더, 더…”

나는 형이 시키는 대로 신나게 연줄을 풀었다. 얼레가 마치 바람개비처럼 돌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연실의 끝이 얼레에 묶여 있지 않았던 것이다. 연이 아주 멀리… 참새 깃털처럼 간당간당 작아지고 있었다. 상철이 형이 웃으며 말했다.

“저것을 뭣이라고 하는 줄 아냐? 액막이연이라고 하는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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