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도자씨, 사랑해요!

  • 입력 2017.03.19 01:38
  • 수정 2017.03.19 02:25
  • 기자명 구점숙 (경남 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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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이 바다가 둘러싸인 섬마을임에도 우리 동네에서는 바다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바다가 품고 있는 조용한 산골이지요. 그러다가 우연찮게 농한기에 바닷일을 하게 됐고 드디어 올해는 처음으로 바지선 위에까지 진출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산전수전 다 겪어 삶의 지혜가 온 몸으로 뿜어져 나오는 중로의 여성분을 만났습니다. 이름하여 도자씨, 75세 쯤 되신 분입니다.

이 분이 원래는 산골짜기 우리 마을로 시집을 오셨더랍니다. 그런데 결혼한 지 1년 만에 남편분이 군대 소집영장을 받고 입대를 해버려서 남편 없는 시집살이를 자그마치 5년 동안이나 하게 됐다 하네요. 4년차에 들던 어느 날, 밭으로 점심 도시락을 싸가서 왼 종일 풀을 뽑는데 그 힘겨움이 말을 못하겠더랍니다. 드디어 닷새째 되던 날, 도저히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싶어 해질 무렵 그 길로 친정집으로 갔답니다. 이른바 가출. 그때 그 시절, 과감히 가출을 감행한 도발(?)에 놀라 얘기를 듣던 우리들은 대단하다고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이어지는 얘기로는 시어른들께서 친정집으로 달려와서 설득하고 친정 부모님께서 거드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시댁으로 다시 갔으나 역시나 시집살이는 고됐다고 합니다.

어느 날 들일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집으로 들어서는데 술을 좋아하시는 시아버지께서 대낮부터 술이 올라 고함을 치셨더랍니다. 왜 소고삐를 제대로 안 묶었냐고 호통을 치시는데 술만 드시면 억지를 부리시는 까닭에 “아버님, 우리도 일하고 와서 정말 힘이 듭니다”라는 한 마디를 했더니 노발대발 하셔서는 친정에 가라고 으름장을 놓으시며 차마 못 전할 말씀을 하시더랍니다. 여기서 또 한 번 청중들의 놀라움이 터져 나왔습니다. 어찌 그때 그 시절 젊디젊은 며느리가 시어른께 말대꾸를 할 용기가 있었냐고, 안 쫓겨났냐 했더니 그날 저녁에 아버님께서 술에서 깨고 조용히 부르셔서는 미안하다고 하셨답니다.

제대한 남편분이 자개농 만드는 기술을 익혀 농도 만들고 문을 만들어 살림을 하는데, 남편은 돈을 많이 버는데도 도자씨에게 돈을 쥐어주지 않더랍니다. 물론 한 주머니로 생활하는 집이 대부분이지만 여성들이 남편과 상의하지 않고서도 돈을 써야할 경우가 얼마나 많은 지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집일을 않고 조개와 굴을 깐다며 직접 소득으로 연결되는 일을 하시게 됐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도자씨와 다른 성격이 많습지요. 말없이 굳은 일 도맡아하며 자리는 빛내는 분, 경쾌한 기운으로 분위기를 한껏 돋워 주시는 분, 경직됐지만 책임감 강한 분 등 여러분들이 계십니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여성농민들은 좀 더 도발적이면 좋겠습니다. 너무 힘든 일, 너무 아픈 일을 다 보듬지 말고 나도 힘들다고, 같이 하자고 도자씨처럼 도발적이고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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