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한식 세계화, 그 허튼소리

  • 입력 2017.03.19 01:34
  • 수정 2017.03.19 02:26
  • 기자명 정은정 <대한민국치킨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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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때 ‘신선로’ 사진을 띄우곤 한다. 여성들은 ‘신선로’라는 이름을 정확히 대지만 남성들과 어린 학생들은 이름조차 모른다. ‘샤부샤부’라거나 ‘잡탕찌개’라고도 한다. 나또한 가사책에서나 배웠다. 그런데 신선로 맛이 제사나 명절 끝에 남은 전을 넣고 끓인 ‘전 찌개’ 맛에 가깝다는 걸 한정식 집에서 먹어보고 오히려 깜짝 놀랐었다. 한식의 간판 모델인 신선로는 웬만한 한식 관련 책에는 꼭 등장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 부인 김윤옥 씨가 출간한 ‘김윤옥의 한식이야기’에도 등장한다. 한국인이 주로 먹고 마시는 음식을 한식이라 부른다면 먹어본 일도, 먹어볼 일도 드문 이 신선로는 대체 누구를 위해 끓이고 있나.

개념이 헷갈릴 때는 교과서가 제격. 2009년 개정판 고등학교 농업 교과서에서는 ‘우리나라 고유의 음식이나 식사’를 한식이라 정의한다. 이걸로는 모자랐는지 ‘우리 국민의 식생활 습관, 사회 제도 및 우리 민족의 기호에 부합하는 한국인이 전통적으로 먹어온 음식’이란 말도 덧붙인다. 애써 한식 세계화 정의도 교과서에서는 이렇게 내린다. 한국 음식과 외국 음식의 ‘혼합’과 ‘타협’. 즉 문화 상품으로 한식을 녹여내 관광 자원화를 이뤄내는 것. 부연이 많고 간결하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개념 정립이 덜 되었다는 것이고 아직 더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한식은 뜨겁다!

농업 교과서 개정 즈음 탄생한 기관이 ‘한식재단’이다. 2010년 3월에 설립된 한식재단은 국가가 직접 나서 한식 세계화 사업을 추진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이명박 정권 때는 ‘여사님의 사업’으로 비판의 대상이었다. 박근혜 정권에서도 용케 살아남아 자격 논란에 휩싸인 이사장들의 취임과 비선실세 최순실의 미르재단 문제까지 뒤얽혀 구설수의 온상이다.

‘팩트’는 이거다. 한식재단은 농림축산식품부 산하의 공공기관이고 ‘농식품산업진흥법’이 설립 근거 법령이다. 농식품부의 ‘한식진흥 및 음식관광 활성화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농산물가격안정기금과 농어촌구조개선특별회계가 지원되는 조직이다. 농민과 농산물 관련 산업 종사자들의 이익에 복무하기 위해 조성된 기금의 일부, 100억에서 120억 정도의 수혜를 받는 곳이 바로 한식재단이란 말이다. 한식 세계화 사업은 단기간에 성과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한식재단의 항변에도 일리는 있다. 하나 지난 7년간 한식재단의 사업에 생산자 농민의 자리를 마련한 적은 있었나. 한식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려내어 국내 농수산물 수출 길도 열고, 음식 관광 활성화로 외국 관광객들을 유치하겠다는 단순한 논리만 앞세우며 아직 일곱 살밖에 안 됐으니 좀 더 지켜봐 달란 소리다. 미운 일곱 살!

하지만 다국적이다 못해 초국적으로 먹고 사는 글로벌푸드시스템의 정점인 나라가 한국이다. 이 나라에서 한식이 갖는 빈약함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고민이나 하고 있을까. 오로지 신선로 앞세우는 세계화의 깃발만 나부낀다. 한식재단 윤숙자 이사장은 언론과 빈번하게 접촉하여 한식을 해외에 알림으로써 농수산물 수출에 큰 도움을 주었다는 식의 자화자찬과 근거 없는 허언만 날리고 있다. 주야장천 밀어본 수출주도형 농업정책 자체가 폐기될 위기에 선 것이 소위 농판의 분위기다. 그러니 한식 세계화 자체도 허튼소리일 뿐이다.

박근혜가 탄핵돼 이제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1조의 엄중함을 목도하는 와중이다. 그간 줏대 없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던 한식재단의 모든 권력은 농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엄중함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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