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새로운 세상을 위한 노래

  • 입력 2017.03.17 22:15
  • 수정 2017.03.17 22:19
  • 기자명 최용혁(충남 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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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혁(충남 서천)]

최용혁(충남 서천)

龜何龜何(구하구하)

首基現也(수기현야)

若不現也(약불현야)

燔灼而喫也(번작이끽야)

 

‘거북아 거북아 / 머리를 내놓아라 / 만약 내놓지 않으면 / 구워 먹으리’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고대가요 ‘구지가(龜旨歌)’인데,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잠깐 배운 것을 20여 년 이상 잘 써먹고 있으니 그 가성비가 구구단에 못지않다. 가령 이런 것이다. ‘이동필아 이동필아 / 우리 농업 살려내라 / 만약 살려내지 않는다면 / 가만히 있지 않겠다.’ 또는 ‘김재수야 김재수야 / 밥쌀수입 그만해라 / 만약 계속 한다면 / 물러나게 하리라.’

대부분의 성명서에서 쓰이는 문법으로 대략 두가지 정도의 고민을 요한다. 첫째, 어떤 대상을 목표로 싸울 것인가? 사드를 예로 들어보자. 평화에 반하는 그 이익의 주체가 록히드마틴의 번영을 노리는 미국 정부인지, 보수우익의 안정을 꾀하는 대한민국 정부인지에 따라 ‘미국놈아 미국놈아’ 아니면 ‘한민구야 한민구야’가 될 것이며,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는 오리온 초코파이를 롯데 것으로 착각하고 일을 낸 ‘중국놈아 중국놈아’하면 되는 것이다.

둘째, 이 가요의 마지막 구절과 관련된다. 원문대로 끽(喫)자를 써서 아주 발라 먹겠다는 다부진 표현을 쓸 것인지, 식(食)자 정도로 적당히 겁만 줄 것인지는 마을회관이나 사랑방에서 노상 해오던 논쟁. 마침내 2017년. 마치 ‘오늘부터 봄이지 않을까’ 할 만한 모처럼 나른하고 따뜻한 날. 적당히 겁만 준 것도 아니고, 다부지게 들이댄 정도도 아니고, 우리는 거북이를 진짜로 잡아먹었다. 며칠째 이어지는 자체적인 축하 잔치는 아직도 진행중. 그리고 곧, 잡아먹힌 거북이보다야 덜 하겠지만 우리에게도 ‘거북이’가 사라진 시간은 혼돈으로 오리.

 

농촌 총각 류제준과 여성 농민 정미영과 마을 이장 조용주, 팔순을 넘긴 전영수는 모두 그 자리에 있었다. ‘박근혜야 박근혜야’ 마지막 구지가를 목놓아 불렀다.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다. 한평생 본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을 봤으며, 광장의 세례를 받았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방법을 배우고 익혔다. 농민이었으므로 부여된 백남기, 전봉준의 이름으로 승리했다.

이제 각자의 이름으로 승리를 이어갈 차례. 그들은 광장의 빛과 온기를 고이 가져갈 수 있을까? 느닷없이 불어 온 봄바람에 코를 킁킁대며 마을로 들판으로 돌아가는 등판이 아직 시리다. ‘겨우내 처박아 놓은 저 농기계 시동 걸릴까?’와 비슷한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광장에서도 끄집어내지 못한 뭔가가 다들 조금씩은 있으리라.

 

“힘 내!”하는 말을 맥없이 하면서 문득 지구 반대편, 멕시코 치아파스주 원주민들을 떠올렸다. 신자유주의 무차별 공세에 맞서 싸우는 그들 지도자의 이야기 같은 성명서와 시 같은 투쟁과 어린이에게, 여성에게, 마을의 노인에게, 전 세계 민중에게 오직 ‘고무하고 동원하고 즐겁게 하고 감동을 주고 분노하게’하기 위해 갈고 닦는 말과 글과 다양한 메시지가 생각났다. ‘이길 것인가 질 것인가’ 보다 ‘가장 고귀한 길’을 고민해 온 사람들에게 띄우는 연서.

농촌 총각 류제준에게, 여성 농민 정미영에게, 마을 이장 조용주에게, 팔십 농민 전영수에게 누구든 편지를 쓰거나 이야기를 하거나 노래를 들려줘라. 우리 함께 하는 길이 여기가 끝이 아니라고. 농촌 총각 장가가고 여성농민 대접 받고 마을은 화목하며 팔십 농민은 평생 뿌린 대로 잘 거둘 수 있는 세상이 저기 거북이 대가리 무덤 너머로 다가오고 있다고, 자꾸자꾸 말 좀 해주고 좋은 노래 만들어 바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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