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 해외의존 이대로 둘 것인가

이창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 입력 2008.04.14 00:37
  • 기자명 이창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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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많은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듯 최근 국제곡물가격 폭등은 과거 주기성을 가지고 반복되던 식량 파동과는 다르다. 간단하게 이야기해서 과거 식량 파동은 일시적인 기상 이변에 의해 공급이 갑자기 줄면서 발생했던 것으로 대략 6∼7년을 주기로 나타났었다. 1972년 곡물 파동의 경우 주요 곡물 수출국이던 옛 소련이 대흉작에 따라 곡물 수입에 나서면서 시작됐으며 실제적으로 곡물생산량은 3% 감소했을 뿐인데도, 쌀과 밀의 국제가격이 각각 367%, 212% 오르는 등 4개 곡물가격이 100% 넘게 급등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실제 곡물생산의 하락에도 원인이 있었지만 조금만 부족해도 큰 위기감을 주는 ‘식량’의 특성이 반영되었던 예라 볼 수 있다.

‘식량위기 본격화’ 인식해야

과거의 식량 파동은 기상 이변에 의한 일시적인 현상이었지만 2006년 말부터 지속되고 있는 현재의 국제곡물가격 폭등은 첫 번째 연재 글에서도 살펴 본 것처럼 쉽게 변하지 않는 구조적인 요인들에 의한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자연적 요소, 구조적인 국제 수급 불균형 문제, 세계 경제의 조정 국면(미국 중심의 일극화 탈피) 등 중장기적인 요소에 의한 국제곡물가격 폭등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이 문제를 식량위기가 본격화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비상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식량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없이는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나라가 심각한 위기에 처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우선 당장에 나타난 문제들을 보자. 국제 곡물가격 상승은 축산물 생산 과정에서 큰 비용을 차지하는 사료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축산농가에 큰 부담이 된다. 2006년 통계로 보면 사료비 비율이 송아지가 37.3%, 우유는 53.2%에 달했으며, 비육우의 경우 송아지 구입비를 빼면 49.8%를 차지했다. 양돈과 양계농가는 이보다 문제가 더 심각하다. 돼지 한 마리를 출하했을 때 최소 5만원 이상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 양돈농가의 실정이다. 소는 조사료 등을 먹일 수 있지만 양돈과 양계는 사료로만 사육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축산물 생산 과정에서 사료비용이 높기 때문에 사료용 곡물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현황에서 국제곡물가격의 상승은 그대로 사료값의 상승으로 이어져 축산농가에 생산비 부담을 안겨주고, 결과적으로 축산물 가격 상승으로 소비자 또한 부담을 안게 된다. 우리나라의 식료품 가격 상승률은 2006년 0.5%에서 2007년 2.5%로 상승했다.

2008년 3월에는 소비자들의 물가불안 지수가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소비자 체감경기가 연속하락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곡물을 해외수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곡물가격의 상승이 계속되는 한 식료품 가격의 상승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빈곤국가서 시위, 충돌 잇따라

국제곡물가격 폭등의 여파로 식품가격 등 생활물가 상승으로 여러 나라에서 시위와 충돌로 사람이 사망하는 사건까지 일어나는가 하면 빈곤에 더욱 허덕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멕시코에서는 ‘또르띠야(Tortilla) 시위’, 이탈리아에서는 ‘파스타 파업’, 이집트에서는 빵 배급을 기다리던 사람끼리 충돌해 7명이 사망했다는 사건이 보도되었다. 또한 아이티 같은 빈곤국에서는 먹을 것이 더욱 줄어들어 아이들이 진흙으로 만든 쿠키를 먹는 가슴 아픈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주식인 쌀에 대한 자급률이 아직 높기 때문에 멕시코나 이탈리아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진 않고 있지만 정부가 2004년 쌀협상에서 2015년이면 쌀을 관세화로 전면 개방하기로 했고, 쌀 이외의 자급률이 5%밖에 안 되기 때문에 지속될 것으로 예측되는 국제곡물가격 급등 현상을 무조건 맘 놓고 지켜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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