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은 동업인가?

  • 입력 2017.03.12 17:10
  • 수정 2018.07.15 23:54
  • 기자명 김순재 전 조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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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재 전 조합장]

농협, 이름에 담긴 의미

농협은 농협마다 그 이름이 있다. 내가 조합장으로 있었던 농협의 이름은 ‘동읍농업협동조합’이고 줄여서 통상 동읍농협이라고 부른다. 일반 국민들에게는 농협이 지역마다 있어, 그냥 ‘농협’이라고 부르니 이름에 관심이 적을지 몰라도 각 농협의 이름은 해석해 볼 필요가 있다. 지역농협으로 분류되는 동읍농협은 그 이름에서 정확히 모든 사업의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동읍농업협동조합은 지역적으로는 동읍이라는 지역에 기반을 두고, 산업적으로는 농업에 기반을 두고, 사업방식은 협동조합으로 수행하라고 역할을 정확히 명시해 두고 있다.

모든 농협에는 ○○농업협동조합, ◇◇축산농업협동조합, □□원예농업협동조합과 같은 방식으로의 이름이 붙어 있다. ○○, ◇◇, □□의 방식으로 먼저 지역을 표시하고 그 다음에는 농업의 어떤 부분에 주 사업을 하는지를 표시하고 있다. 농협은 법으로 정하기를 어떤 지역에서 어떤 사업을 협동조합 방식으로 하라고 ‘딱!’ 정해두고 있다. 농협은 국가에서 ‘농업협동조합법’을 만들어서 시행할 때 그 역할을 명시한 것이다.

각 농협의 명칭은 먼저 지역을 언급하고 그 다음은 농업의 분야-경종, 축산, 원예, 특작 등-를 언급하고 마지막에는 사업의 방식을 일괄 언급해 두는 형태이다. 그 이름의 내용을 짚어서, 왜 ‘협동조합인가’의 문제를 고민해봐야 한다. 왜 우리는 시장-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농민들에게 농업주식회사가 아니고 공산당식의 협동조합인지를 구성원들은 돌이켜 생각 해봐야한다.

농협은 법으로 정하기를 어떤 지역에서 어떤 사업을 협동조합 방식으로 하라고 ‘딱’ 정해놓고 있다. 국가가 ‘농업협동조합법’을 만들어 시행할 때 농협의 역할을 명시한 것이다.

협동조합의 어려움, 동업의 어려움

어릴 때부터 어른들의 말씀에 ‘동업은 형제간에도 하지 않는 거’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솔직히 어린 시절이나 세월이 지나고 나서도 나는 그 의미를 깊이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농사를 지으며 살았으니까 굳이 동업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지만 품앗이 형태의 협동에 대한 사소한 고민만 했었다.

농협의 조합장이 되고나서야 비로소 규모화 된 협업에 대한 고민들을 깊이 하게 되었다. 다양한 조합원들과 사업을 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협업-동업이라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그 어려움에는 기형적으로 탄생한 농협과 오랫동안 비정상적인 사업들을 자연스럽게 수행한 농협의 과거사가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지역농협의 경우 의무에 대한 실질적인 강요 없이 동등한 권리를 가진 조합원들의 자산 편차가 크고, 조합원 연령 차이도 많고, 경종업 중심의 농협은 소속 조합원의 농업 종사 내역이 다양하고, 사실상 거의가 상임임원인 선거직 조합장의 역할 문제가 심각했었기에 이름은 협동조합이지만 협동조합으로서의 역할은 상당한 한계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농협, 조직 구성은 매우 좋아 보이는데

농협은 조합원이 1,000명만 되어도 조합원 총회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서 농협에는 대의원 제도가 있다. 지금은 제도가 조금 바뀌어 농협 대의원 선출을 실질적인 선거를 통하도록 유도하고 있지만 내가 조합장으로 있었던 시기의 대의원 선출은 대개의 마을 회의에서 호선으로 선출하는 방식이었다. 동읍농협에는 70명의 대의원이 있었다. 대의원의 구성은 영농회의 규모에 따라 차이가 있었는데 46개 영농회에서 67명을 선출했고, 영농기반은 우리 지역에 두고 있지만 우리 지역에 거주하지 않는 관외의 조합원에서 3명의 대의원을 선출했었다.

그런 대의원의 선출을 영농회별로 협동조합의 사업을 고민하면서 선출하는 게 아니고 마을에서 목소리가 크거나 자기가 대의원을 하겠다고 마을회의에서 고집을 부려 선출돼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조합장시기에 각 마을에서 선출된 대의원의 면면을 보면서, 대의원 선출 이후에 들려오는 여러 잡음들을 전해 들으면서 상당한 고민에 빠진 경우가 있었다.

대의원은 협동조합의 사업들을 심의해야 하고, 협동조합의 사업을 결산해야 하고, 농협의 상임이사·비상임이사·감사도 선출해야 하고, 대의원은 소속된 분과 위원회에서 농협의 여러 사업들을 검토하고 제안도 해야 하는데 상당수 대의원들은 소속 영농회 조합원들도 모르게 선출돼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어디 하소연도 못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것에 이의를 달다가는 협동조합에서 어떤 사업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러한 현실은 조용히 수긍하고 대의원들의 모임에 앞서 더 많은 내용을 준비하여 눈높이를 조정해 갈 수밖에 없었다. 사실 조합원의 총의를 반영해야 할 대의원 구성이 그리되면 사업하기에는 더 쉬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면서도 늘 아쉬운 것이 농협의 대의원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선출하는 과정을 거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조합원 총회가 불가능하니 농협의 최고 의결기구는 대의원인데 확인해보니 다른 여타 지역에서도 대의원의 선출과정은 비슷했다. 그러하니 협동조합 사업의 고민은 애초부터 조합원의 내용들을 면밀히 받아들이기 힘든 구성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는 생각이었다. 지금 이 시기면 전국 대다수 농협들이 대의원들을 새로 선출 했을 것이다. 선출된 대의원들의 면면들을 살펴보면 ‘조합원인 우리가 농협의 주인이다’라는 표현이 당당히 나올 수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른 농협도 그렇겠지만 동읍농협의 경우 대의원 회의를 개최하는 것도 상당한 비용이 필요하다. 정기총회, 임시총회 2회 내외, 대의원들로 구성된 분과위원회 1회만 개최하여도 5,000만원가량의 비용이 든다.

그래서 농협은 대의원들이 선출한 이사회를 월 1회 가량 소집해서 조합원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사업을 점검하는 형식을 가지고 있다. 이사회에서 농협 사업의 전반을 토론하고, 집행방식을 결정하고 조합장에게 그 내용의 집행을 위임하게 된다. 대의원과 이사들에게서 위임된 사업은 조합장이 직원들과 집행한다. 이와 같이 농협의 구조는 참 잘 짜여 있기는 한데, 그 운용은 자주 구설에 오른다.

협동조합의 사업이 왜 구설에 자주 오르는지는 일단 농협의 여러 구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뭐, 어쨌건 협동조합들의 여러 문제는 조합의 운용과정에서 협동조합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조합원들에게 1차 책임이 있고, 경영책임자인 조합장의 의무가 막중하지만 규정(법)으로 보면 농협의 틀은 아주 좋다.

기본적으로 조합원은 동등해야 하는가

동읍농협의 경우 6만원 내외를 출자한 조합원에서 5,000만원을 투자(?)한 다양한 조합원으로 구성돼 있다. 6만원을 출자한 조합원은 협동조합의 일상 사업에 사실상 관심이 별로 없고, 5,000만원을 출자한 조합원은 출자배당에 늘 불만이 있다.

또 동읍농협의 경우 남녀 성별의 차이 외에도 연령적으로 소수의 20~30대 조합원들과 80대인 고령의 조합원들도 있어, 교육지원사업에서 생산지원비를 포함한 다른 여러 사업의 비용집행에서도 차이가 있어 불만들이 쏟아져 나오는 경우도 발생한다. 한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혈기왕성한 젊은 층은 ‘조합의 역할이 부실하다’고 섭섭해 하고, 고령의 조합원들은 ‘괄시한다’고 섭섭해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동읍농협은 다수의 과수농가와 논농업 농가, 소수의 하우스 농가와 축산 농가로 대부분의 조합원이 구성돼 있어 생산규모에 맞게 사업예산을 배치하더라도 각각의 입장에서는 늘 자기가 종사하는 분야에 관심이 부족하다는 불만들이 많았다. 이러한 불만들은 조합장을 선출하는 현행제도에서 조합원들이 조합장에게 부당하게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우리나라 농협이 기형적으로 변한 이유의 첫 번째는 협동조합 초기에 사실상 조합장을 정치권에서 임명하는 관치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여러 내용들 중에서 협동조합 사업의 내용을 조금이라도 바꿔 보고자 결산과정에서 조합원의 출자 배당을 줄이면서 준조합원의 이용고 배당을 실시하고, 조합원의 이용고 배당을 늘려 나가는 과정에서 욕들은 것만 가지고도 ‘100살은 넘게 살겠다’는 농담도 많이 들었었다.

우리 동읍지역의 농사 중에서 가장 큰 농사는 단감농사이다. 우리 지역의 연간 단감 생산량은 10kg 기준으로 150만 박스 정도로 추정된다. 생산한 단감의 첫 거래는 밭떼기 거래이고, 고령의 농가들은 수확하여 노지상태에서 개인별로 선별 출하하고, 규모화 된 일부의 농가는 노지 출하와 저장 판매를 병행한다.

단감은 여러 품종이 있지만 우리 지역에서는 추석 시기에 나오는 조생 품종인 ‘서촌’이 일부 있고, 대다수 농가에서는 만생종 ‘부유’를 재배하고 있어 수확기가 되면 홍수 출하를 해마다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역의 협동조합이 농산물의 홍수 출하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 하에 ‘서촌’ 품종에 대해서는 가격유지와 품질관리를 위해 수탁-공선사업을 실시했고, 만생종인 ‘부유’에 대해서는 홍수출하 방지를 위해 지역농협에서 단감을 사들이는 매취사업을 시행했다.

손잡고 함께하는 사업, 수탁-공선

조생종인 ‘서촌’ 단감은 양력 기준으로 익어가고 음력으로 쇠는 추석은 해마다 그 시기가 들락거려 숙기를 맞춰 출하하기에는 상품성 있는 품위를 관리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농협에서 최근 2~3년 내에 ‘서촌 단감’의 출하 실적이 있는 농가에 연락을 취해 ‘서촌 단감 공동선별 출하’를 실시하였는데, 첫해에는 수탁-공선 판매량이 지역 전체 출하물량의 30% 내외였다. 출하 후, 가격을 정산해보니 수탁-공선 판매한 농가의 가격이 높게 나왔다. 수탁-공선 후 판매는 업무의 상당한 부분을 농협이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첫 해에는 상당히 조심스럽게 접근했었다.

2년째에는 출하 실적이 있는 전 농가를 대상으로 홍보하며 사업을 실시해 희망하는 조생종 단감의 전체 물량을 수탁-공선을 통한 판매를 하였다. 그 해도 품위를 인정받아 조생종 단감은 일반 농가의 위탁 판매보다는 월등히 가격이 높게 나왔다.

그런데 농협으로 수탁-공선으로 출하하지 않고 농협에 위탁 판매한 일부 농가들이 자기들의 위탁 판매한 농산물의 가격에 대해 농협에 보상을 요구하는 억지를 부리는 일이 있었다. 그런 조합원들이 싫어서 이틀간 출근 시간을 늦추고 퇴근을 앞당겨 하면서 ‘조합장을 그만둘까’를 고민하기도 했었다. 농협에서 수탁-공선 사업에 참여해 달라고 최근 몇 년 내에 조생종의 출하실적이 있는 농가에 연락해 단감을 달라고 요청할 때는 거절한 농가들이었다.

협동조합의 조합원이 협동조합의 수탁-공선에 응하지 않고 농가자체의 판단에 의한 출하를 하고 자기 결정사항에 대한 손실까지도 협동조합에 변상을 요구하는 일부 협동조합원들의 횡포에 가까운 행위는 조합장의 선거를 앞두고 부리는 억지였다. 그런 억지를 부리던 조합원 중의 한명은 조합을 나가면서 내게 “내년 3월 11일이 선거지요? 그 때 보자”고 했었다. 수탁-공선으로 농협직원은 힘들어도 농협이 위험해지지는 않는다.

발맞춰 해야 하는 사업, 매취

농협이 단순히 업무를 대행하여 수매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고 지역농협이 특정 시기의 시세를 감안하여 지역의 농산물을 적극적으로 사들여 출하를 조정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농협의 경영 측면에서 보면 상당히 위험하기도 한 사업이다. 단감 같이 우리지역에서 생산하는 농산물을 농협에서 출하조정을 위한 매취를 시행하는 것은 협동조합의 매우 중요한 사업이다. 동읍농협 같은 경우는 전체 사업규모가 일정정도는 돼 위험이 덜한 편이지만 매취 사업은 잘못 판단하면 지역농협이 부실화 될 가능성도 있는 사업이다.

농협이 적극적으로 출하를 조절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농산물의 특성상 가격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장시세와 비교해 적정한 시세에 농협이 매입을 했을 때, 이익이 발생할 수도 있고,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

농협 측에 이익이 발생하면 그 이익은 적립해 그 다음해의 가격과 수급 조절에 힘써야지, 결산 내역에 따라 더 달라고 떼를 쓰면 사업을 하지 말자는 소리다. 농협이 매취 사업의 결산을 ±0에 맞추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익이 날 수도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익이 나면 ‘농민을 대상으로 농협이 장사를 하느냐’고 따지고, 손실이 날 땐 ‘경영책임을 묻는다’고 하면 농협더러 사업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와 같다. 매취 사업은 농협과 농민의 깊은 신뢰 속에서 진행해야하는 사업이다.

인식의 공유 없이 협업은 어렵다

농협이 상호금융 사업과 더불어 공동생산·공동 판매를 위한 경제 사업을 위해서는 농협의 정도경영을 밑바탕으로 해야 하고 농협의 동반자인 농민조합원도 알맞게 처신해야한다. 농협은 신용-경제사업은 물론이거니와 산후조리원을 운영해도 제재가 없고, 장례식장을 운영해도 제재가 없지만 협동조합이라는 한계가, 많은 사업에 실질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여럿이 모여 함께 사업한다는 것은 협동조합이건 동업이건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공감대가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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