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명물 먹거리, 지역 농업을 만나라

  • 입력 2017.03.11 23:31
  • 수정 2017.03.11 23:32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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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역 명물 먹거리에 지역 농산물을. 당연한 명제인 듯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원가절감 등을 이유로 지역 먹거리에 수입산 농산물을 사용하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우리 농산물 소비를 위해 두 팔 걷어붙인 먹거리 업체들이 돋보이는 이유다. 지난 7일 강원도 횡성군 안흥손찐빵협의회 소속업체의 작업장에서 한 직원이 우리 농산물로 만든 안흥찐빵을 찜통에서 꺼내고 있다. 한승호 기자

김영호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몇년 전 뜻하지 않게 진땀을 뺀 일이 있다. 천안에서 고교시절을 보낸 그는 어느 날 예산에서 서울 사무실로 올라가던 중 천안역 앞의 한 호두과자집을 들렀다. 천안시민이라면 누구나 원조로 꼽는 맛집으로, 동료들에게 천안호두과자의 진수를 맛보여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동료들과 호두과자를 뜯어 먹던 중 누군가가 상자에 표시된 재료의 원산지를 지적했다. 계란을 제외한 전 재료 수입산. 당연히 국산 재료를 썼으리라 생각했건만, 전국 농민들의 수장으로서 얼굴이 붉어질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학창시절부터 간직해 온 천안호두과자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은 한순간에 배신감과 서운함으로 바뀌었다.

천안호두과자, 안흥찐빵, 경주팥빵, 제주오메기떡…. 지역별로 그 지역의 이름을 내걸고 전국적인 명물로 자리매김한 가공식품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 식품들이 과연 지역산 원재료를 사용하는지 들여다 본다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오히려 상당수는 수입산 원재료를 사용해 원가를 낮추고 있다.

물론 가공식품 제조는 개인 사업의 영역이다. 수입산 원재료를 얼마나 사용하고 이윤을 얼마나 남긴다 한들 그것을 비난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하지만 지역의 이름에 기대 이윤을 올리는 가공식품업체들이, 지역 농민들이 아닌 외국 농민들의 경제에 기여하는 모습은 누가 봐도 껄끄러운 면이 있다. 지역 주민들은 물론 전국의 소비자들 또한 결코 바라는 그림이 아닐 것이다.

이들 가공식품에 소요되는 농산물은 밀·팥 등 대개가 소위 국내 비주류 밭작물들이다. 만약 이들이 지역 농업과 연결될 수만 있다면 농민들에겐 새로운 소득원이 생기는 것이다. 품목을 불문한 농산물의 만성적 공급과잉 상황에서 그 의미는 매우 크다. 지역 명물 먹거리가 처음부터 지역 농업을 기반으로 발전하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쉬운 일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명물 먹거리를 보유한 지역은 지금의 불안정한 농업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하나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관심을 가진 몇몇 지역들이 원재료의 지역 자급을 시도하고 있다. 횡성군은 최근 안흥면내 손찐빵 팥소의 100% 자급을 추진하기 시작했으며 경주팥빵의 선두주자 ‘황남빵’은 이미 2011년부터 지역 농가와 재배계약을 맺고 있다. 천안호두과자 또한 원재료의 지역 자급을 꾸준히 확대해 가고 있다. 지자체의 의지, 업체들의 공감, 농민들의 노력이 어우러져 명물 먹거리를 매개로 전에 없던 새로운 가치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쉽지만은 않아도 한 걸음 한 걸음이 의미있는 행보다.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지면서 원산지에 대한 관심도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인터넷 상에선 지역 먹거리들의 수입산 원재료 사용을 아쉬워하거나 지역산 원재료 사용을 기꺼워하는 구입후기들을 무수히 만나볼 수 있다. 끝내 수입산 원재료 사용을 고수하고 있는 업체도 많지만, 지역산 원재료 사용은 지역 농가와의 상생 측면뿐 아니라 소비자들의 새로운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결단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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