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21] 농부와 트럼프

  • 입력 2017.03.10 09:45
  • 수정 2017.05.26 10:19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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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의 3월 중순은 모종을 키우기 위해 씨앗을 포트에 한두 알씩 파종하기도 하고, 과수원에서는 전정·전지 작업도 하고, 방제도 하는 등 바빠지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지난해에 과일가격이 폭락했어도 봄날 잿빛 과수나무에서 움터 오르는 연두빛 꽃망울을 보면 다 잊고 또 한해의 농사를 준비하는 것이 농심인 것 같다.

봄이 되면 농부는 또 묵묵히 밭으로 들로 나아간다. 금년에는 하늘이 얼마나 도와줄지, 병충해는 또 얼마나 기승을 부릴지, 가을에 가격이 어떻게 될지, 판매는 잘 될지,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봄이 되면 또 농사일을 시작한다. 초보농부인 나도 알프스 오토메 겨울 전지·전정을 모두 마치고 방제작업도 이미 마쳤으며, 앉은뱅이 토종밀과 토종 육줄 쌀보리를 조금 파종하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하고, 농촌지역공동체를 지켜내며, 자연환경을 유지 보전하기 위해 본인이 인식하던 못하던 농부들은 묵묵히 농촌에서 고된 농사일을 한다.

그러나 작금의 우리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정농단사태나 정치인, 법조인, 지도자란 자들의 작태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 중 하나가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미 FTA를 재협상해야 한다고 나선 일에 대한 우리사회의 대응문제이다. 우리 정부나 언론이나 학자들의 논조를 보면 재협상을 아예 전제로 하고 어떻게 재협상을 해야 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것도 미국이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는 섬유나 자동차 산업의 재협상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들이 그것이다.

그런데 명심해야 할 것은 국제협상은 한번 맺어 놓으면 당사국 모두가 동의하지 않는 한 재협상은 물론 어떤 협정문구 조정도 불가능하게 돼있다는 사실이다. 환언하면 한-미 FTA 재협상을 미국이 요구한다해도 우리가 동의하지 않으면 재협상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한-미 FTA 재협상을 미국이 일방적으로 요구하면 당연히 해야만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이 나라가 과연 주권국인가 하는 회의가 든다. 일단 미국에 대해 재협상은 없다고 못 박아야 한다. 왜 재협상을 해야 하는가를 논리적으로 실증적으로 구체적인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한-미 FTA를 잘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적어도 주권국이라면 그렇게 나오는 것이 순서라는 것이다. 그렇게 미국이 재협상을 원한다면 우리도 농업부문의 협상이 잘못됐기 때문에 아예 폐기하자고 나설 배짱이 주권국가라면 있어야 한다.

나는 현역시절 한-미 FTA를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반대했으나 역부족이었고, 지금은 농촌에서 농사지으며 살아가는 작은 농부로서 이 시대와 지도자라는 분들의 문제인식에 화가 나기도 하고 서글퍼지기도 한다. 그래도 내일은 하루 종일 토종 씨앗과 모종을 심어야 할 작은 밭을 일궈야겠다고 생각하며 고단한 몸을 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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