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

  • 입력 2017.03.10 09:44
  • 수정 2017.03.10 09:55
  • 기자명 임영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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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환 변호사

아직 단정할 수 없지만 이제 대한민국은 탄핵정국에서 대선정국으로 넘어가려 하고 있다. 대선 후보자들은 농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농업·농촌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공약을 제시할 것이다. 사실 한국 농촌사회의 겉으로 드러난 큰 문제는 ‘양극화와 노령화’이다. 특히 양극화는 농촌 내부의 대농과 소농과의 양극화도 문제이지만 도시와 농촌 사이의 양극화, 나아가 농촌의 빈곤화가 더욱 문제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 대선 후보자들의 입장도 그렇겠지만, 살림살이가 점점 어려워지는 농촌을 살리기 위해 어떻게 하면 농가소득을 올릴 수 있을까가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화두로 여겨질 것이다. 정부와 농업관련 단체들은 그 접근 방식은 다를지라도 어떻게 하면 농가소득을 향상시킬까를 고민해 왔다. 예를 들어 대농중심의 농업구조로 변화를 꾀하거나, 특용작물이나 유기농 재배를 늘이기도 하고, 로컬푸드 운동을 확산시키기도 하고, 도시인구와 청장년층을 농촌으로 유입시키고, 나아가 IT와 결합된 소위 4차 산업혁명을 기대하기도 한다. 다 일리가 있고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다들 앞만 보고 달릴 때 뒤쳐져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2014년도 농가 총부채는 31조3,000억원이었고 2015년도 말 기준 농가의 평균부채는 약 2,700만원이다. 아마 2대 8의 한국사회 구조에 비추어 볼 때, 소수의 대농과 다수의 소농으로 구분되고 다수의 소농의 경우 그 부채는 평균보다 더 높을 것으로 보인다. 상당한 빚을 지고 있는 농민들에게 농가소득을 올리기 위한 새로운 사업을 제안하고 농협을 통해 저리로 사업자금을 빌려준다고 치자. 그렇다면 지금까지 경험에 볼 때 그 중 몇이나 성공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 농민들은 빚만 더 늘어날지 모른다.

따라서 현재 한국의 저성장 구조와 열악한 농촌가계에 비추어 볼 때 농가소득 증대 방안만큼이나 과도한 부채 해결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최근 첫 회생파산 전문법원인 서울회생법원이 출범했다. 행정법원, 가정법원, 특허법원에 이어 4번째 전문법원이다. 회생법원의 설립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06년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2015년까지 연간 적게는 13만건에서 많게는 20만건 정도의 회생파산 신청이 있었다. 10년간 무려 약 162만명이 회생파산신청을 한 것이다. 회생파산은 더 이상 단순히 사적인 사정에 기인한 개인의 영역이 아니라 저성장 구조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영역이다.

다른 어느 곳 보다 농촌사회는 과도한 빚에 억눌려 있다. 여전히 우리 사회의 상당수는 회생과 파산은 개인의 게으름과 도덕적 해이의 산물로 본다. 돈을 빌렸으면 당연히 열심히 일해 그 돈을 갚아야 하지 나는 모르겠다는 태도로 회생이나 파산을 받는 것은 매우 부도덕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한번 가정해 보자. 평생 열심히 일해 온 농민이 정부 정책에 따라 특수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싼 은행 이자로 돈을 빌려 재배시설을 설치하고 고가의 농기계를 구입했다. 헌데 수요예측을 잘못하거나 급격한 기후 변화로 인해 농산물 가격이 폭락해서 엄청난 적자를 보았다. 농민은 농사일을 해 번 돈의 상당부분을 은행 이자와 원금을 갚는데 사용한다. 우리는 과도한 빚에 억눌려 살고 있는 이 농민에게 농가소득을 확 올릴 수 있는 새로운 농업모델을 제시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시급히 이 농민에게 내밀어야 할 손은 농가소득을 증대시킬 수 있는 손이 아니라 과도한 빚에서 해방시켜 줄 수 있는 손이다.

현 시점에서 농가경제와 관련해서는 어떻게 하면 농가소득을 증대시킬지에 대한 고민만큼이나 어떻게 하면 농가부채를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도 심도 깊게 이뤄져야 한다. 농가부채를 낮추기 위해서는 과도한 빚에 시달리는 농민들에 대해서는 최대한 빨리 회생 내지 파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줘야 한다. 한번 실패하면 모든 것이 끝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제도적으로 보장될 때만이 우리의 농업이 한발씩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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