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놀이 ②] 지구는 돌고 팽이도 돈다!

  • 입력 2017.03.10 09:42
  • 수정 2017.03.10 09:56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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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아이들의 겨울철 놀이 중에서 연날리기 못지않게 재미진 것이 팽이치기였다. 하지만 팽이를 신나게 치고 놀았던 기억만 있고 그것을 만드느라 애먹었던 경험이 없는 사람은 아마도 두 부류일 것이다. 아이들의 장난감을 손수 만들어주는 매우 자상한 아버지를 두었거나, 아니면 팽이도 공장에서 제작하여 문구점에서 판매하는 시대에 유년기를 보냈거나.

대개는 가지고 놀 당사자가 수공(手工)으로 자체 조달할 수밖에 없었는데, 하지만 헛간이나 뒤란 어디에서 뚝딱거리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공부는 안 하고 또 뭔 해찰이여!”

“고놈의 것, 밥이 나오냐, 쌀이 나오냐!”

따위의 지청구가 날아오기 십상이다. 그 시절의 어른들은 공부 빼놓고는, 당장 재화로 바꿀 수 없는 모든 생산성 없는 행위를 ‘헛짓거리’로 여겼다. 아무리 그렇기로 팽이치기의 즐거움을 포기한다면 그 또래의 아이가 아니다.

부모님이 없는 틈을 타 팽이 제작에 들어간다. 적당한 굵기의 나무토막 하나를 갖고 와서는 자귀로 팽이의 하반신에 해당하는 부위를 뚝딱뚝딱 깎아나간다. 아예 처음부터 팽이 크기로 나무를 동강낸 다음에 깎으려고 덤비는 놈은, 실과 시험에서 50점도 못 맞은 멍청한 녀석이다. 다 깎은 다음, 맨 나중에 톱으로 잘라야 작업하기가 수월하다.

그런데 아뿔싸, 한참 깎다 보니 속이 비었다. 애당초 참나무나 고욤나무나 감나무 등 조직이 치밀하고 묵직한 가지를 골랐어야 하는데, 하필 소나무 토막을 골라잡는 바람에 한가운데가 비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애써 한 작업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일단 깎고 볼 일이다.

대충 모양이 갖춰졌다 싶으면 이제 다듬어야 한다. 그 작업에는 낫이나 부엌칼이 제격이다. 아이의 머릿속에서는 벌써 팽이가 쌩쌩 돌아간다.

마지막으로 크기를 가늠해서 톱질을 한다. 그러나 한가운데에 뚫린 구멍이 문제다. 하지만 다 해결방법이 있다. 연장통을 뒤져서 못 하나를 꺼내서는, 망치나 돌로 두드려 대가리를 때낸 다음, 팽이의 꽁무니에 박아 넣으면 근사한 심(心)이 된다. 읍내 사는 아이라면 자전거포에 가서, 체인에서 떨어져 나온 쇠구슬 하나를 얻어서 박으면 좋았겠지만, 벽지 깡촌에 살았던 나에게는 쇠못도 감지덕지였다.

한 가지 공정이 더 남았다. 책가방에서 크레파스를 꺼내 치장을 한다. 톱질이 서툴렀기로 팽이의 얼굴이 울퉁불퉁 흉하지만 썩 개의할 일은 아니다. 빨강, 노랑, 파랑 정도면 된다. 표면 전체를 색칠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돌아가면 팽이가 제 알아서 색을 만들어낼 터이니.

아, 팽이채도 만들어야 한다. 방안 어딘가에서 못 입게 된 바지를 꺼내서는 가위로 재봉선 부분을 잘라낸다. 고놈을 막대기에 질끈 묶으면 끝이다. 운동화 끈이 있다면 두 가닥으로 겹쳐 묶으면 팽이채로 손색이 없다.

이제 슬슬 나가볼까? 동네 놀이터엔 벌써 아이들이 모여 여기저기에서 팽이를 친다. 그런데 아버지나 삼촌의 도움을 받아 만든 아이들의 팽이에 비해, 조막손으로 뚜덕뚜덕 깎은 내 물건은 팽이라고 부르기에도 부끄러울 지경이다. 하지만 일단 돌아가면 고놈이 고놈이다. 창피하면 얼른 돌려버리면 된다. 팽이를 돌리는 데에도 요령이 필요하다.

팽이채의 줄을 팽이에 감은 다음에, 왼손에 팽이를 움켜쥐고 오른손에 채를 잡은 상태에서, 공중에서 채를 풀면서 땅바닥에 놓아 돌리는 방법이 있고, 팽이채의 줄을 감은 상태에서 팽이를 땅바닥에 눕혔다가 채를 낚아채서 돌리는 방법이 있다. 팽이의 종류도 다양해서 보통 팽이의 둘을 한 데 포개 붙여 놓은 것처럼 생긴 양날팽이가 있었고, 크기가 어마어마한 ‘왕팽이’도 있었다. 팽이가 돌아간다. 녀석의 아랫도리를 두들겨 패는 그 쾌감을 어디에다 비기랴.

그 시절, 아이들끼리 주고받은 우스개 수수께끼가 있었다. 때릴수록 좋다고 춤추는 것은? 물론 답은 ‘팽이’다. 거뭇거뭇 땅거미가 질 즈음에야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누가 부엌칼을 요 모냥으로 맹글어놨냐!”

엄니의 부지깽이 욱대김을 피할 방도가 없다. 하지만 내일도 나는 팽이를 돌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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