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농민은 무엇으로 사는가?

  • 입력 2017.03.10 09:41
  • 수정 2017.03.10 10:00
  • 기자명 김정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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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열 경북 상주

놀아도 마음이 편치 않은 3월이다. 지난 가을 심어놓은 양파밭이 자꾸 사람을 부르는 듯하다. 밭을 한 번씩 둘러보러 나간 남편이 “양파가 3분의 1도 채 살아 붙지 못 했다”고 장탄식을 하며 자꾸 나를 돌아보는 것을 모른 척하며 지금까지 견뎠는데, 이제는 더이상 듣지 않은 척 못 하겠어서 호미를 들고 양파밭으로 나갔다.

아이고! 참말로 양파모종을 심어 놓은 구멍이 많이 비었다. 작년 가을 늦게 심은 데다가 모종이 약해서 뿌리를 채 내리지 못 하고 얼었나 보다. 엄동설한에 살고자 발버둥 치며 말라 갔을 생명을 생각하니 내 게으름 때문인 것 같아 죄책감이 든다. 뒤늦게나마 한 포기 한 포기 양파를 만져가며 건강하게 생명을 꽃 피울 수 있도록 흙을 떠 붓는다.

한 생명들을 마주한다. 어떤 놈은 뿌리가 다 드러나 비닐 위에 얹혀 있는데도 용케도 흙 한 두 개 붙이고 살았다. 어떤 놈은 뿌리, 줄기가 다 마른 것 같은데도 속에서 눈곱만하게 연둣빛이 올라온다. 살았다! 저 생명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내 뱃속에서도 힘이 불끈 솟아오른다. 그래, 다시 시작이다.

일 년 내내 뼈 빠지게 일해도 어찌된 일인지 사는 건 자꾸 뒷걸음만 치고, 더우나 추우나 우리들의 노동으로 먹을거리를 갖다 바쳐도 “고맙다”는 소리는커녕 “짓지 말라”는 농사나 우겨짓는 사람 취급 받으니 살맛이 안 나서 다시는 들판에 나설 용기가 안 날 줄 알았다. 그러나 다시 노오란 햇살이 내 몸에 닿고, 땅 속에서 올라오는 따스한 바람이 콧구멍을 간질이니 저절로 고개가 들판으로 돌려지고 저절로 발걸음이 들판으로 향한다. 농민은 무엇으로 사는가?

지금 양파를 하나하나 살펴가며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손질을 하는 것은 이 양파가 나중에 돈이 되어 돌아올 것을 기대해서가 아니다. 아마 이 양파를 수확해서 팔아도 생산비도 못 건지기 십상일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농민들은 봄이 되니 또 한 해 농사를 시작한다. 그것도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말이다. 농민에게 농사거리는 내 몸이다. 내 생명이다. 내 핏줄이다. 양파는 당분과 유황성분이 있는 백합목 백합과의 외떡잎 두해살이식물이 아니라 내 자식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살펴야 할 생명. 그리고 평생 지고 가야할 내 짐.

농민은 기다림으로 산다. “농산물은 수입해서 먹으면 되니 제발 대한민국 농민은 사라져라. 사라져라”를 주문처럼 농민들 눈앞에서 외워도 대한민국 농민들은 농사를 포기하지 못 한다. 농민들은 기다린다. 봄에 뿌린 저 조그마한 씨앗이 사람을 살리는 고마운 먹을거리로 돌아올 날을. 햇빛 속에, 바람 속에, 빗속에서 자라고 익고 수확하는 그 기쁨의 날을. 그리고 언젠가는 농민들의 거친 손이 가장 거룩한 것임을 알아줄 날을.

갑자기 날이 추워진다. 꽃피는 것을 시기하는 추위인가보다. 아직 손질하지 못한 양파가 마음에 걸리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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