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마음의 문제

  • 입력 2017.03.10 09:33
  • 수정 2017.03.10 09:34
  • 기자명 배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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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있어 새로운 주제는 설렘과 두려움을 동반한다. 지난달 걸음마수준의 농업전문지 기자로서 마주한 구제역은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더욱 먼저, 크게 다가왔다. 내가 좋은 질문을 할 수 있을지, 진짜 사실을 전달할 수 있을지 생각은 엉키고 마음만 급해졌다.

구제역 발생 이틀 만에 정부는 항체형성률을 내세워 농가의 백신 접종이 부실한 ‘모럴해저드’가 있었다고 발표하며 축산농가에 책임을 떠넘겼고, 언론에서는 이를 그대로 퍼 나르거나 살을 붙여가며 축산농가를 몰아붙였다. 연일 쏟아지는 기사들을 읽으면서 침착하려고 애를 먹었다. 기사에는 개인적인 마음이 들어가면 안 되니까, 자꾸 ‘기자수첩’화 되는 걸 고치느라 지면에 실릴 기사는 너덜너덜해졌다.

‘현장에 답이 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어느 업종이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을 테고 입이 마르도록 얘기했을 문장이다. 그래서인지 이런 중차대한 문제가 발생하면 각 업종의 수장들은 일단 현장을 방문해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 격려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그 모습은 사진으로 찍혀 보도되곤 한다.

그런데 어렵게 찾아가 들은 현장의 이야기, 마음은 닫아둔 채 귀로만 듣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현장에 다녀와서도 결국 말로 글로 생산해낸 것은 ‘숫자’뿐이었으니까. 항체형성률 몇%, 거점소독소 몇 개소 운영, 구제역 성금 몇 원 전달…. 결국 소홀하고 미흡했던 정부의 관리·대응 체계에 대한 사과는 올해도 실종됐다.

7년 전 굉장히 좋아했다가 잊고 있던 ‘마음의 문제’라는 노래가 문득 떠오른 것은 내 기사가 축산농가에 작은 도움이라도 됐을까하며 먼 산을 볼 때였다. ‘정작 미안해야 할 사람들은 다 그건 너의 문제니까 어쩔 수 없다 말해요.’ 결국, 마음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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