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그레샴의 법칙

  • 입력 2017.03.05 12:55
  • 수정 2017.03.05 12:56
  • 기자명 홍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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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

좋은 품질의 물건과 그렇지 않은 물건이 시장에서 경쟁하면 좋은 품질이 살아남는다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하지만 종종 현실에선 정반대인 현상이 일어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보여준 현실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로 집약되는 그레샴의 법칙을 다시 곱씹어 보게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축산의 오늘날은 어떠한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있지는 않은가.

AI와 구제역 사태에서 정부는 축산농가에게 방역의 책임을 돌렸다. 동시에 계란가격이 뛰자 앞뒤 가리지 않고 수입 계란을 들였다. 정부가 선택한 두 조치는 서로 모순된다.

축산농가 스스로 방역을 강화하려면 방역 시설을 대폭 확충하고 소독도 더 많이 해야 하고 인력도 더 투입해야 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생산비를 올리고 가격상승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농축산물 가격이 상승하면 정부가 나서 할당관세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가격을 주저앉게 만든다. 이러면 농가 스스로 축산에 대한 재투자 의지를 가질 수가 없다.

축산물 HACCP 인증은 어떤가. HACCP 인증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 축산농가가 축산물 HACCP 인증을 획득해도 유통단계에서 HACCP 인증을 받지 않으면 소비자는 농가의 인증여부를 알 길이 없다. 결국 HACCP 인증 여부와 상관없이 축산농가의 수익은 그대로다. 이 현실을 바꾸지 않는 한 HACCP 인증 확대는 요원하다.

우리 축산은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춰 생산성을 넘어 가치의 문제를 논의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급격히 이뤄지고 있다. 정부가 눈을 감고 귀를 막는다고 이미 돌아가는 패러다임 전환이 멈추진 않는다.

AI·구제역 확산에 보여준 여론의 반응은 급격한 패러다임 전환에 따른 변화 중 하나다. 지난해 11월부터 짚어보면 공장식 축산을 뛰어넘으라는 여론의 요구가 고비마다 분출하고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조차 산란계농가 1곳에서 70만수를 살처분하는 현장에 투입된 뒤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그것이 개별농가의 책임인가. 축산의 규모화, 대형화, 산업화를 부추겨온 정부정책에 책임이 있다.

품질이 다른 소재의 상품이 시장에서 같은 가치를 가질 때 품질이 좋은 상품이 시장에서 소멸하고 품질이 낮은 상품이 살아남는 현상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라고 표현한다. 정부가 제 책임을 다하지 않는 채 지금과 같은 모습을 유지한다면 그레샴의 법칙에 나오는 현상대로 건강한 축산농가들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패러다임 전환에 대응할 축산정책의 근본적 변화를 축산 종사자 모두가 함께 모색해야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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