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농활] 콩이 사람을 만나는 보들보들한 방법

  • 입력 2017.03.05 02:03
  • 수정 2017.03.05 02:05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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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일찍 일어나 발길을 재촉해 봤지만 도착했을 땐 이미 작업장에 모락모락 고소한 김이 가득했다. 옥천군 로컬푸드의 살아있는 역사 ‘옥천살림협동조합’엔 조그마한 두부공장이 있다. 이곳의 아침은 보통 사람들의 아침보다 조금 먼저 찾아온다.

작업복과 고무장화, 팔토시와 속장갑·겉장갑, 앞치마에 헤어캡까지, 장비는 프로급으로 갖췄으되 사람은 어쩔 수 없는 아마추어다. 콩 고르기 찔끔, 짐 나르기 찔끔,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들을 기웃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이윽고 주어진 첫 공식업무는 콩 소분. 40kg짜리 콩 포대를 가져와 3.5kg씩 계량해서 망에 담는 작업이다. 콩 3.5kg은 두부 한 판(15모)에 소요되는 양인데, 10g 단위까지 맞춰 계량할 정도로 품질 균일에 신경을 쓴다.

요령이 없는 탓인지 힘이 없는 탓인지 바가지질이 세 포대를 넘어가자 손목이 뻐근하다. 한 번에 퍼담는 양은 점점 줄어들고 급기야 왼손까지 동원한다. 고작 네 포대를 옮겨담는 데 손목이 얼얼했다는 이 딱한 젊은이의 호소는 쉬는시간 동안 좋은 놀림감이 됐다.

그래도 계량한 콩을 좁은 망에 ‘샥’ 담아내는 작업엔 요령이 붙은 모양인지, “적어도 한 가지 기술은 확실히 터득했네”라는 팀장님의 칭찬을 받았다. 나보다 두 배는 빨리 이 작업을 하시는 하 주임님의 너털웃음은 애써 외면했다.

소분한 콩은 세척·선별 후 갈아서 콩물을 끓인다. 콩물에 간수를 치고 10분이 경과하면 몽글몽글 덩어리가 지는데 이것을 틀에 넣어 눌러낸다. “간수 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젓는 거나 두부를 자르는 일까지, 다 중요한 작업이에요.” 가마솥에 콩물을 끓여 나무틀에 눌러내던 어린시절 할머니의 두부와 비교하면, 낡은 도구들은 반듯반듯하고 편리한 스테인레스 기계들이 대신했지만 그 과정이나 정성은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옥천살림의 두부는 옥천의 농민들이 재배한 친환경 우리콩을 사용하며 옥천군내 유치원·어린이집, 초·중·고등학교 급식을 중심으로 대개 지역에서 소비된다. 오늘 만든 두부 상당수는 봄방학이 일찍 끝난 안남초등학교·죽향초등학교 어린이들 입으로 들어간다. 생산자는 소비자를 알고 소비자는 생산자를 안다. 옥천군이 자랑하는 지역 먹거리 자급과 지역경제 순환의 가장 의미있는 장점이다. 때문에 이번 농활 또한 그 어느 때보다도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두부 만들기와 노고가 진배없는 청소·설거지 작업에 이어 포장·라벨 붙이기 작업으로 일과를 마무리했다. 고백컨대, 500g 두부제품 라벨 중 심히 비뚤게 붙인 놈이 하나 있다. 혹 제조일이 2017년 3월 1일인, 라벨이 비뚤어진 옥천살림 ‘우리콩두부’를 구입한 분은 인증샷을 찍어 <한국농정>으로 연락 주시라. 기자가 조그만 선물이라도 보내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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