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수입한 미국산 계란, 덤핑으로 떠넘겨

4번 공매 끝에 2만3천판 처분 … 유통기한 임박해 ‘1판당 3천원’
1억1천만원 수입·8천만원 판매 ‘30% 적자’
설 연휴 2주 지난 뒤 사실상 첫 공매 “가격하락 효과 없어”

  • 입력 2017.03.04 16:51
  • 수정 2017.03.04 17:09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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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계란 값은 정부가 올린 거예요. 계란이 없어서 폭등한 게 아니라 묶어둬서 그런 거니까.”

정부는 치솟는 계란 값을 안정시킨 최고의 수단으로 ‘계란수입’을 내세우고 있지만 현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게다가 정부가 직접 수입한 미국산 신선계란마저 유통기한이 임박해 덤핑으로 ‘넘긴’ 상황이고 보니 시장교란만 키웠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농림축산식품부(장관 김재수)는 지난 1월 6일 ‘계란수급 안정화 방안’을 발표했다. 1월 4일부터 6월 30일까지 6개월간 신선계란과 계란가공품 모두 9만8,600톤(시장유통용 2만7,853톤, 가공용 7만747톤)을 관세 없이 수입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에 2월 말까지 운송료 지원 특혜까지 얹었다. 30개들이 계란 한 판당 4,500원 하던 것이 두 배 이상 뛰어 1만원까지 오르자 응급처방으로 ‘수입’ 카드를 꺼내들었다.

지난 1월 14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농림축산검역본부 검역관들이 수입된 미국산 계란을 육안으로 확인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결국 비행기와 선박을 통해 계란은 수입됐고, 설 명절 이후 계란 가격 안정에 일정부분 도움이 됐다는 평가를 얻었다. 외견상 수입전략은 성공했다. 하지만 설이 지나면서 계란소비가 감소한 것이 더 중요한 이유라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무엇보다 정부가 수입한 미국산 계란은 ‘제 때’ 풀리지도 않았고 그마저도 유통기한에 밀려 덤핑처리 됐다는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다.

농식품부는 aT를 통해 지난 1월 24일 미국산 신선계란 41.5톤을 수입했다. 30개 들이 한판으로 치면 2만4,340판이다. aT는 설 명절 코앞인 1월 26일 1차 공매를 시도했으나 명절 직전이라 응찰이 전혀 없었다. 이어 2월 3일 다시 1차 공매를 시도했지만 전통시장 상인으로 대상을 한정지어 이때도 응찰률은 ‘0’. 닷새 뒤인 8일 2차 공판에선 2만3,250판과 품위저하품 140판을 대상으로 사실상 첫 공매를 시도했다. 2주나 묵힌 ‘신선계란’은 1만800판이 팔려나갔다. 3차 공매일은 13일, 1만2,450판과 품위저하품 14판은 역시 한판도 팔리지 않았다. 결국 4차 공매인 17일 1만2,590판을 품위를 구분하지 않고 게시한 끝에 전량판매했다.

사상 초유의 계란 수입에 우려도 적지 않았다. 거의 100% 자급을 하던 국내 계란품목을 일시적이나마 ‘개방’을 한다는 것은 향후 어떤 식으로든 개방물꼬가 트일 것이라는 불안함을 동반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신선도와 깨지기 쉬운 특성상 ‘신선계란’ 수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유통업계는 예견했다.

aT 공고에 따르면 미국산 신선계란 유통기한은 3월 4일까지다. 미국은 콜드체인 시스템의 조건에서 신선계란에 45일의 유통기한을 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역으로 추정하면 미국에서 1월 19일 포장된 상품이다. 정부의 계란은 유통기한이 임박해 1판당 3,000원씩 덤핑으로 팔아넘겼다는 말이 유통관계자들 사이에 나돌 지경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국내산 계란의 유통기한은 포장시점부터 21일인 점을 기준으로 미국산 계란은 유통기한을 한참 넘긴 ‘팔지 못할 상품’인 셈이다.

농림축산식품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미국산 계란이 가격안정에 효과적이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항변했다. 가격에 미친 효과가 아주 없진 않겠지만 사실상 정부가 세금으로 사들인 미국산 계란은 설 명절 한참 뒤인 2월 8일에나 판매했기 때문에 설 전후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이 없다.

대변인실 관계자는 또 “당시에 수입을 하지 않았더라면 가격을 어떻게 콘트롤했겠나.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장의 답변은 달랐다. 생산자측 A씨는 “정부가 계란수입을 서두를 게 아니라 방역대에 묶인 계란을 풀어내는 게 합리적이었다”고 단언했다. 그는 AI가 발생하지 않은 농가도 3km 혹은 10km로 계란의 이동제한을 걸다보니 시중에 공급되는 계란이 적었다고 반박했다.

“AI 발생농가 반경 3km 방역대는 3주간 이동중지였고 10km 방역대는 1주일 이동중지였다. 여기에 묶인 상당수의 계란이 있었는데, 민심이 좋지 않다보니 나중에 3km 방역대도 일주일에 한번 계란을 방출할 수 있게 했다. 처음부터 계란 유통에 융통성을 줬더라면 문제가 보다 쉽게 풀렸을 거다”라며 답답해했다. 또 방역대에 묶여 있던 계란을 1주일에 한번 수요일이나 목요일에 유통할 수 있게 하다 보니 계란유통인들이 전국 계란을 수집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도 아쉬워했다. 광역자치단체별로 요일만 달리했어도 계란유통이 보다 원활해 졌을 거란 지적이다.

계란값 폭등에 재빨리 꺼내든 계란수입 카드는 결국 세금을 들였으되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덤핑으로 판매해 운송비 등은 차치하고 계란값에서만 30% 손해를 보게 됐다. 시장교란은 덤이다.

또 꼭 닫혀있던 계란수입 빗장이 풀린 것을 틈타 “미국가금류수출협회가 최근 미국 정부에 한국의 계란 관세율 27%를 14%로 내리도록 압력을 가해 달라”는 통상압박 소식이 일간지를 장식하고 있다. 섣부른 계란수입, 정부의 축산정책 실책이 또 하나 추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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