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대란이 남긴 것

  • 입력 2017.03.04 16:46
  • 수정 2017.03.04 17:03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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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조류인플루엔자 확산으로 국내 계란 수급에 경고등이 켜지자 정부는 ‘전가의 보도’처럼 미국산 계란 수입을 들고 나왔다. 사상 첫 계란 수입 이후 50여일, 산란계 농가는 계란 수입 효과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서울 독산동에 위치한 서울계란협동조합 계란집하장 창고에 최근 출하된 국내산 계란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한승호 기자

밥상에 비로소 평화가 찾아들었다. 입 짧은 꼬맹이들을 위해서도, 반찬이 마땅찮은 주부들에게도, 소화에 자신 없는 노인들을 위해서도 계란은 반가운 반찬 소재다. 여태껏 ‘금배추’, ‘금삼겹’을 겪어봤지만 ‘금계란’은 상상도 못했다. 30개들이 한판에 5,000원대, 한 알 당 170원꼴로 사먹던 계란이 1만2,000원까지 폭등하자 시중에선 계란대란이 벌어졌다.

고병원조류인플루엔자(AI)로 가금류의 대대적인 살처분이 원인이었다. 닭이 살처분 되거나, 이동제한에 걸려 쌓여있는 계란의 발이 묶였다. 설을 앞두고 물가 챙기기에 급급했던 정부는 설 명절 계란소비가 증가할 것에 대비해 긴급처방에 나선 끝에 지난 1월 3일 농림축산식품부가 관계부처 합동으로 ‘계란과 계란가공품 할당관세 적용과 관련해 세부 운영계획’을 발표했다. 계란대란의 경험도 처음이지만 비행기로, 배로 신선계란을 수입한다는 것 또한 사상초유 사건이었다.

설이 지나면서 고공행진 하던 계란 값은 하향세를 탔다. 전처럼 100원대는 아니지만 “1인당 계란프라이 한 개로 오늘 과소비 한번 했다”는 우스갯소리를 할 만큼 값이 부담스럽진 않다. 정부는 수입계란이 가격안정을 가져왔다고 홍보중이나, 계란생산 현장에선 할 말이 아주 많다. 계란이 없어서 가격이 폭등한 게 아니라 쌓아두고 풀지 못하게 해서 시장의 대혼란이 왔다며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AI 발생농가로부터 3km 방역대 안에 묶여있는 계란은 초기엔 3주 동안 이동금지를 시켰다. 하지만 계란 값 동향이 좋지 않자 이를 1주일에 한 번씩 유통을 허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부의 일관성 없음이 드러난다. 설 명절 시기가 고비이니 계란 소비를 줄이자는 것에 힘을 썼더라면 어땠을까. 방역대의 계란을 보다 융통성있게 유통시켰으면 어땠을까. 현장에선 신선계란 수입이라는 초강수보다 생산기반을 안정화 시키는 조치에 정부의 고민이 집중되지 않았던 점에 이만저만 실망이 아니다. 정부가 수입한 미국산 계란은 설을 한참 지난 2월 8일에야 공매를 통해 유통을 했다는 점도 정부실책의 한 증거다.

사실 AI가 발생하기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계란공급 과잉을 걱정하던 정부였다. 계란 한 알이 100원대로 ‘서민들의 반찬’으로 애용될 수 있었던 것도 계란생산기반이 탄탄했기 때문이다. 신선계란은 물론 계란가공품 조차 수입이 적었던 것은 국내 자급률 100%의 혜택에서 비롯됐다. ‘식량안보’라는 말을 일반인들이 잘 사용하지 않지만, 이번 계란대란이 식량안보의 단적인 사례다. 국내산 계란은 대형마트에서 유통기한이 21일인데 미국산 계란은 45일이라는 점도 꺼림칙하다. ‘안전한 농식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국내 농업기반의 중요성을 온 국민이 실감하는 시간이 됐다. ‘계란이 쌀이었다면’이라는 글은 제목만으로도 아찔하다.

정부가 수입한 신선계란은 흥행에도 참패했다. 4차까지 이어진 공매에서 미국산 계란을 완판 했으나 계란값에서만 30% 가량 손해를 입었다. 더 큰 문제는 전혀 틈이 없었던 국내 계란산업에 미국이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미국가금류수출협회가 최근 미국 정부에 한국의 계란 관세율 27%를 14%로 내리도록 해 달라는 통상압박 소식이 일간지에 실렸다.

밥상에 평화가 찾아왔지만, 신선계란보다 더 많은 물량의 수입산 계란가공품 덕에 빵을 먹다가도, 소시지를 먹다가도 ‘유통기한 임박한 수입산 계란 아닌가’ 하는 껄끄러움이 남았다. 계란대란의 또 다른 후유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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