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는 - 놀이 ①] 굴렁쇠 이야기

  • 입력 2017.03.04 13:05
  • 수정 2017.03.04 13:06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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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

‘월악산 국립공원’이라는 이정표를 따라 구불구불한 산길을 자동차로 한참 달려가다 보면, 양지바른 기슭에 아담하게 들어선 예전의 월악초등학교가 나타난다. 그러나 이 초등학교는 학생 수의 감소로 폐교된 지 오래다. 대신 그 자리에 ‘월악민속놀이학교’(현 한국전통문화체험학교)라는 색다른 간판을 단 학교가 둥지를 틀었다.

아이들이 일정기간 동안 숙박을 함께 하면서 우리 전통 민속놀이를 체험할 수 있는 학교라는데, 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놀이라는 게 무슨 삼국사기나 왕조실록에 나오는 옛 조상들의 그것이 아니다. 연날리기, 팽이치기, 38선 놀이, 썰매타기, ㄹ자 놀이, 굴렁쇠 굴리기, 자치기, 땅따먹기, 쥐불놀이 같은 것들이다. 여기까지 읽고서,

“어어? 나도 소싯적에 저런 거 하고 놀았는데?”

이렇게 반응했다면 당신은 필시 나이가 쉰 줄, 그 이상일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시골마을의 골목길이나 공터에서, 혹은 벼를 베어낸 논바닥에서 생활처럼 즐겼던 그 놀이들이 어느 결에 ‘민속’의 자리로 물러나버려서, 이제는 그런 놀이를 가르치기 위해서 특별하게 만들어진 학교를 찾아가서 돈을 내고 배워야 하는 세상이 되고만 것이다.

“아이들이 어떤 놀이를 하고 자라느냐에 따라 품성이 달라집니다. 컴퓨터 앞에 혼자 앉아 전자오락을 즐기며 자라는 요즘 아이들이 다분히 개인적이고 독선적인 성품을 지닐 수밖에 없는데 반하여…”

어린 시절 공동체 놀이를 함께 즐기며 자란 세대의 경우 남과 더불어 사는 지혜와 아량을 일찌감치 키우며 성장하였기로, 이른바 ‘왕따’ 따위의 소외현상이 사회문제가 되지는 않았다는 것이 이 학교를 설립한 박남병 씨의 진단이다. 박 씨가 월악민속놀이학교를 설립하여 개교한 때가 1998년이고, 내가 취재차 찾아간 때는 개교한 지 4년이 지난 뒤의 어느 날이었는데, 당시 쉰한 살(현재 66세)이었던 그는 곧 입소할 학생들을 위해 이런 저런 놀이기구를 챙기고 있었다.

“우리 때만 해도 이런 것들 다 직접 만들어서 갖고 놀았는데….”

“맞아요. 어디서 굴렁쇠 바퀴 요런 놈 하나 구하면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지요.”

우리 두 인간문화재 - 우리가 즐겼던 놀이들이 이제는 ‘민속’이 되었다니 그것들을 할 줄 아는 나이 든 세대는 몸뚱어리 자체가 모두 문화재가 아닌가? - 는 쌍 장구를 치며 웃었다.

어느 일요일에 학교에 갔더니 재석이 녀석이 운동장에서 능숙하게 굴렁쇠를 굴리고 있었다. 녀석은 한 번만 굴리게 해달라는 내 청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나는 녀석과 보조를 맞춰 뛰면서 물었다.

“이렇게 좋은 놈을 어디서 구했어?”

“이거 우리 아부지가 만들어줬다?”

“뭣으로 만들었는디?”

“쩌그 구판장 지름통으로.”

동네 구판장에서 석유를 드럼으로 갖다놓고 팔았기 때문에 구판장 마당에는 빈 드럼통이 여럿 있었다. 재석이 아버지는 그 드럼통의 위쪽 테두리를 도려내어서 아들에게 굴렁쇠 놀잇감을 만들어준 것이다. 그 날 통사정 끝에 나도 한 번 굴려보았는데, 대못을 박아 ㄷ자로 구부린 막대를 바퀴에 대고 굴릴 때 나는 차르르…하는 금속성 마찰음이 잠자리에 들어서도 잊히지 않았다. 아부지한테 부탁해봤자 씨도 안 먹힐 것이고, 결국 내 힘으로 만들자고 작심했다.

다음 날 방과 후에 종석이를 불러서 직접 제작에 들어갔다. 쇠가 없으니 나무로 대신하기로 했다. 마른 대나무를 낫으로 쪼갠 다음, 양끝을 휘어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두 가장자리를 비료포대에서 풀어낸 노끈으로 묶어 매었다. 아, 그러나 우리가 한 나절이나 땀 흘려 만든 그 ‘굴렁 죽(竹)’은 실패였다. 이음매가 매끄럽지 못한 탓으로 번번이 막대에 걸려버린 것이다.

“맞어, 저것!”

엄니가 땔감으로 쓰려고 마당에 내다 버린 망가진 소쿠리에서 테두리 부분을 떼어내니, 근사한 굴렁쇠 바퀴가 되었다. 우리는 고놈을 마을 공터로 가지고 가서 저물도록 굴리고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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