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새봄부터 흉을 보겠습니다!

  • 입력 2017.03.04 13:04
  • 수정 2017.03.04 22:14
  • 기자명 구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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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점숙 (경남 남해)

 

정월대보름도 지나고, 할망이 데려오는 비바람 따라 한 해 날씨가 점쳐지는 2월 초하루도 지났으니 이제 슬슬 농사를 시작하는 때입니다. 이곳 남도는 겨울이라고 죄다 말라붙지 않습니다. 논밭에 마늘, 시금치, 양파 등 겨울채소도 있고 간혹 생명력 있는 풀들도 퇴색하기는 해도 풀빛을 가지고 있어서 겨울이라 해도 윗동네하고는 다르지요. 동네에서 제일 안쪽에 자리한 우리 집은 겨울 한철에는 비교적 조용한데, 이맘 때 쯤 부터 좀 시끄러워집니다. 집 위쪽에 있는 논밭에 거름을 내고 가느라고 경운기나 트랙터가 주인장 따라 부산해지기 때문이지요. 부지런한 농민들은 벌써 봄 감자를 심었습니다.

이미 작년 가을에 계산이 끝났을 것입니다. 농민들은 계절의 코앞에서 농사 계산을 하지는 않으니까요. 씨앗준비부터 퇴비에 수확까지 염두에 두고서 일을 배치합니다. 농사는 한 해 동안 짓지만 머릿속은 벌써 전부터 치열하게 궁리하고 있던 것입니다. 무심결에 돌아가는 일들이 고도의 집중력으로 여러 날 여러 번 차근차근 준비해낸 것이니 그 투박함 속에서도 세련미가 있고, 복잡한 과정도 단순한 단계로 나누어서 해내니 일단 보기에도 쉬워 보입니다. 하지만 섣부르게 농민들의 하루를 따라했다가는 몸살은 기본이요 일은 엉망으로 꼬이며 성과를 보기도 어렵습니다. 어쨌거나 하늘에 달린 날씨나 세상에 달린 농산물 값은 쉽게 어떻게 못 해도 농민들 손에 달린 농사만큼은 최고로 만들어 보겠다는 다짐으로 봄밤이 여물어 갑니다.

봄에는 씨앗도 농민들 손을 떠나 본밭으로 가지만 아이들도 본밭으로 갑니다. 새 학기를 맞아 제 공부할 곳으로 가는 것이지요. 오늘은 군복무를 마친 아들 녀석이 복학하는 까닭에 이사를 해주고 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이제 갈 사람은 다 가서 후련하다고 했더니, 남편은 허전하다며 애들 데리고 있는 것이 무슨 부담이냐고 합니다. 하긴 아들 녀석이 있으면 거름 내는 일이며 나무하기, 밭 치우기 등 힘든 일도 같이 하지요, 말싸움이 생기면 중립적인 척 하면서 때때로 편도 들어주지요, 재치 있는 농담으로 웃음폭탄을 터뜨려주기도 하겠다 뭐 허전하기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나로서는 식구를 하나 더 데리고 있는 것이 자식이라고 해도 힘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일하고 들어오는 시간까지 늦잠 자는 아들이 미안해서 또 신경쓰이고, 밥을 드시자마자 트림을 꼭 해주시는 시어머니의 식사습관이 혹 불편할까봐 가족들의 기색을 살핍니다. 말하자면 가족사이의 관계를 매끄럽게 이어주는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자니 애가 조금 타는 것이지요. 어디 가족이 그냥 굴러가나요? 만약 그런저런 문제없이 잘 지내는 가족이라면 필경 마음 넓은 누군가가, 또는 생각이 깊은 누군가가 보듬어 안고 간다는 말이겠지요. 아니면 참고 살거나.

새롭게 글을 쓴다하니 남편은 내 흉은 조금만 봐 달라고 합니다만, 어쩌겠습니까? 농사짓는 여성과 남성의 이야기를 하자는데 남보다 내사람 이야기가 더 쉽고 게다가 유심히 볼 수 있으니 회자되기 십상이지요. 여기서 남편은, 세상의 남편들이기도 하니 유쾌하게 되돌아보며 우리들 안으로 쏘옥 들어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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