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뫼비우스의 띠

  • 입력 2017.02.26 21:48
  • 수정 2017.02.26 22:27
  • 기자명 심문희(전남 구례군 마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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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희(전남 구례군 마산면)

끝을 맺기를 처음과 같이 하면 실패가 없다. 굳이 노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끝맺음을 잘하기를 바란다.

지난 1년 ‘3.8 여성의 날을 아십니까?’에서 ‘대한민국 출산지도 유감 있음’까지, 여성농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2주일에 한번쯤은 무던히도 고민했던 날들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당몰댁에서 부송댁으로 이어지는 할머니들의 삶에 대해 더 함께 고민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 세월이었다. 그녀들의 삶이 조용히 묻히고 잊혀져가는 것에 무심했던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위정자들을 두고 볼 수만은 없다며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저마다 각양각색의 이유와 요구가 있겠지만 최소한 동의할 수 있는 것에 한목소리를 내며 불편한 듯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됐던 날들이었을 거라 생각해본다.

나이가 들수록 더 까칠해 지는 듯하다. 반백년을 살아왔음에도 여전한 성차별과 폭력에 노출되는 여성의 모습을 눈앞에서 목도한다. 때로 여성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규정하고 있음을 느낄 때면 차라리 침묵하고 싶다.

방목으로 키운 아이들이 이십대가 돼 꼰대 같은 세상이라며 차별에 심히 저항한다. 기성세대로 문제제기만 해왔지 눈에 보이게 변화된 모습을 만들어 내지 못했으니 딱히 할 말이 없다.

정월대보름이 지나니 따뜻해진 마루 끝에 앉아 곧 땅에 뿌려질 씨앗들을 고른다. 이미 고추모종은 따뜻한 곳에서 자라고 있다. 수천 년 동안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농사의 기술은 알고자 하는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지식이 됐다.

아마 이 세상도 돌고 돌고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사이의 착취와 억압 차별이 없는 세상을 향해 가고 있다. 우리만이 향유해야 할 세상이 아니라 다음세대도 함께 누려야할 세상으로 만들어 가야겠지. 원시공동체 사회에서, 행복지수가 제일 높다는 부탄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

천만 개의 촛불이 타오른다. 한 켠에선 전혀 다른 모습의 초가 밝혀지기도 한다.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친다. 가만히 내려놓으면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으련만 작은 기득권에서 거대권력들까지 각양각색이다.

150년 전 동학의 농민들이 넘지 못한 우금치 마루 뒤에 새롭게 펼쳐갈 세상에 대한 상상! 곧 현실로 만들어 내느냐 그렇지 못하냐는 지금 우리들의 한걸음에서 나오지 않을까? 사발통문을 돌리던 농민들이 원탁회의를 한다. 꼬인 듯 하지만 하나로 연결돼 있는 우리 모두가 한줌도 안 되는 기득권을 놓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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