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20] 장날 유감

  • 입력 2017.02.25 12:44
  • 수정 2017.05.26 10:19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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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생활에서 장날은 기다려지는 날이다. 매번 가지는 못하지만 한 달에 한두번은 꼭 나간다. 모처럼 많은 사람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4일, 9일장인 양양 장날만 되면 평소에는 거의 조용하고 사람찾아보기 힘들 정도인 양양읍이 모처럼 북적인다. 뿐만 아니라 농민들이 직접 재배하거나 물 맑고 공기 좋은 이곳 설악산 자락에서 어머님들이 손수 뜯어온 온갖 산나물과 특산물을 저렴하게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터를 유심히 살펴보면 좀 아쉬운 점이 있다. 장터의 요지인 중앙 통로에는 각종 생필품과 먹거리를 파는 상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외지에서 들어오는 상인들이다. 정작 지역 농민들은 중앙 통로가 아니라 뒷골목이나 옆 골목에 자리를 잡는다.

예로부터 장날에는 우리의 어머님들이 손수 농사지은 농산물을 바리바리 싸 들고 오셔서 장터의 중앙거리에 죽 자라를 펴고 판매하는 것이 일반적인 장날 풍경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중요자리를 외지인들에게 내어주고 말았다. 내가 소속돼 있는 양양친환경농업연구회에서 운영하는 작은 판매대도 중앙거리에 있지 않고 골목 안에 있다. 주객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물론 그렇게 된 데는 여러 사정들이 있겠지만 가장 큰 요인은 양양지역의 인구수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양양은 인구 2만7,000명 밖에 안 되는 작은 군 지역이고 타산업이 거의 없는 전형적인 농산촌 지역이다.

그러나 양양은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다. 설악산 대청봉이 양양군에 위치하고 있을 만큼 설악산 대부분이 사실 양양군에 소속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동해안을 끼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연어의 고장이요 송이의 고장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지리적 자연적 조건은 천혜의 지역이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삶의 활력소가 되고 우리 모두가 자랑스러워 해야 하고 지켜야 할 농산촌 지역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이 지역은 점차 공동화되어 가고 있는데 설악산만 보호하고 도시인들을 위한 휴양·휴식공간만을 제공하라하면 결국 지역주민은 할 것이 없고 대규모 자본력을 가진 휴양업체만 배불리는 꼴이 되어 지역경제는 점점 더 어려워지게 될 것 같다. 도시인과 자본가를 위해 지역주민들은 희생해야 하고 지역 공동체가 해체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지역과 지역주민이 살아야 하고 이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결국 국가와 도시민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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