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고향 이장이 고영태에게 보내는 편지

  • 입력 2017.02.25 12:42
  • 수정 2017.02.25 12:44
  • 기자명 박형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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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이 지경까지 되리라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대통령의 국정농단은 국민들의 예상을 훌쩍 뛰어 넘어 충격적이었다. 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시작에 고영태가 있었다.

고영태의 폭로가 없었으면 이처럼 빨리 사실적으로 국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고영태의 용기에 쉽게 박수를 보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의 행실에 의문도 있고 낯 뜨거운 소문도 많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당당한 소리가 나왔다. ‘용기 내어줘서 고맙다 힘내라’라는 힘찬 목소리가 촛불집회 광장에 나온 것이다. 고영태의 고향은 담양군 대덕면 성곡리이다. 그 고향 사람들이 현수막을 걸고 이장님이 마을 분들을 대표해서 고영태군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으신 것이다.

고영태씨는 4살 때 아버지를 5.18 계엄군에 의해 잃으면서 고향을 떠났고 이로 인해 마을에 고영태씨를 아는 분은 없다고 한다. 다만 아시안게임 펜싱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고영태 집안을 기억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번 사태로 다시금 떠오르는 인물이 됐다. 다만 당황스럽고 불안했다.

이장님의 말씀을 통해 고향민의 마음이 느껴졌다. 농민만이 할 수 있는 넉넉하고 따뜻한 인정이었다. 상처 입은 고향민을 위로하고 보듬어주는 진심이었다.

역시 농민이고 고향이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촛불광장에 나온 모든 분들이 박수를 치고 가슴속에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분위기였다.

이 날 촛불집회에서는 이 뿐만이 아니었다. 대덕면에 살고 계시는 위안부 할머니를 위로하기도 했다. 곽예남 할머니는 93세로써 최근에 생일을 맞이 하셨는지 생신 축하 현수막까지 걸려 있었다.

할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는 조카의 발언에 귀를 더욱 쫑긋 세우고 더 힘찬 박수를 보내주셨다. 짠한 마음과 울분이 서려 있었다.

아픈 사연도 있었다. 촛불집회에서 풍물을 치기 위해 운전하고 가다가 사고로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는 공연도 열렸다.

서울은 매주 수십만명이 모여 촛불의 바다가 만들어진다. 반면 농촌은 그런 장광이 만들어 지기 힘들다. 그렇다 해서 가만있을 수 없다면서 담양군농민회는 면단위를 순회하면서 촛불집회를 개최한 것이다.

2월 4일 열린 대덕면 촛불집회는 대덕면민 2,020명중에서 300명이 나왔으니 15%가 참석한 것이다. 수도권 시민의 참여율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참석이다.

대덕면 뿐 아니라 대전면, 수북면도 다르지 않다고 한다. 참여자 규모도 그렇지만 촛불집회의 내용도 힘찼고 풍성했다. 농민 정서답게 촛불이 끝나면 떡국도 나눠 먹으면서 서로 격려하고 헤어진다.

이처럼 농촌마을의 온갖 사연이 모이고 농민들의 이야기가 풀어지니 그 지역의 민중의 역사가 살아난다. 민중의 애환이 모이니 대동세상이 열리고 있다.

촛불은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밝게 빛난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절박하다.

작은 농촌마을에서 열리는 촛불집회만큼 가장 밝고 가장 뜨거운 촛불이 없을 것이라는 자만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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