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작은 박근혜들의 나라

  • 입력 2017.02.24 14:29
  • 수정 2017.02.24 14:31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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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지난 7일 ‘갑질 조합장 퇴출’을 요구하는 협동조합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강원도 춘천에 울려 퍼졌다. 지난해 8월 벌어진 주영노 춘천철원축협 조합장의 횡포가 언론에 보도되며 조합장들의 갑질 횡포가 또 다시 뜨거운 화두로 떠오른 것이다.

주 조합장은 한 사무직 직원을 주말마다 운전기사로 부린 것도 부족해 이 직원이 자녀 돌잔치를 못해 하루만 쉬겠다고 하자 “(딸을)땅에 묻어버려”, “이 ○○, 아주 패죽일까” 등의 폭언과 폭행도 서슴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재벌 2세의 비행기 음주난동이나 술집폭행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일이 대표 협동조합인 농협에서 벌어진 것이다. 비단 춘천철원축협만의 일은 아니다.

이날은 마침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이 현장 소통경영에 나서 농협중앙회 강원본부를 방문한 날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이 자리에서 “농민들이 신뢰를 하지 않는다면 농협이 아무리 경영을 잘하고 이익을 내도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정답이다. 하지만 눈앞에서 벌어진 노동자들의 목소리엔 이렇다 할 대꾸를 하지 않았다. 물론 김 회장 자신도 잘못된 관행,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많은 것을 내려놓고 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정답이 나와 있어도 이를 실현하기란 쉽지 않다. 어렵사리 움켜쥔 권력을 내려놓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어서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국면을 보면 단번에 이해가 갈 것이다. 국민의 눈높이에선 지금 당장 하야해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이지만 박 대통령은 꿋꿋이 청와대를 지키고 있다. 한 나라의 대통령도 이럴 진데 지역에서 농협 조합장이라는 이름으로 떵떵거리던 그들은 다를까.

농협개혁을 위해 지역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어려운 발걸음을 떼어 온 이들은 “학연·지연·혈연으로 얽힌 지역사회엔 자신들의 왕국이라 생각하는 작은 박근혜들이 많다”고 한다. 일부 임직원과 조합원이 조합장을 왕처럼 떠받들고 있는데다 끈끈하게 뭉쳐 뒤로는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것이다. 처벌을 피하는 것도 능숙하다.

통합진보당을 정당해산이라는 칼날로 숙청했던 박 대통령처럼 농협개혁을 요구해온 이들 또한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로 어느새 종북빨갱이가 돼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몽테뉴는 “사회가 부패할 때 나타나는 첫 번째 현상이 시민들이 진실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실을 직시한 사람들이 탄압을 받는 가운데 작은 박근혜들의 퇴출을 요구하는 자리에도 눈 감은 자들이 또아리를 틀고 있다. 광화문 광장에도 태극기를 든 그들이 넘실된다. 캄캄한 현실이지만, 용감한 시민들이 두 눈을 부릅뜨지 않는다면 한국사회도, 지역농협도 부패의 낭떠러지로 떨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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