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동채소 판매로 ‘우뚝’

[농협, 새 희망의 길을 찾다②] 제주 성산일출봉농협

  • 입력 2017.02.23 22:36
  • 수정 2017.03.05 17:41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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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지난해 정부가 추진한 농협법 개정안이 일부 수정 끝에 국회를 통과하며 농협중앙회 사업구조 개편이 결국 지주체제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사업구조 개편 전면 재평가 및 경제사업연합회 체제로의 전환 등 농협 개혁을 요구하는 농업계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이에 <한국농정신문>은 ‘좋은농협만들기국민운동본부’와 공동기획으로 매월 1회 모범적 지역농축협의 목소리를 통해 농협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새롭게 모색할 계획이다.

매해 농협 전국 업적평가 ‘최상위’ 기염 … 탄탄함 밑바탕으로 ‘신유통’ 등 도전

제주 성산일출봉농협 현용행 조합장(왼쪽에서 다섯 번째)과 임원, 직원들이 성산일출봉이 그려진 대형그림 앞에서 밝게 웃으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제주도의 특색을 떠올리면 삼다도라 불리는 만큼 일반적으로 돌·바람·여자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협동조합 관련 특색도 있다. 현용행 성산일출봉농협 조합장은 “역사적사건도 많았지만 변방에다 척박한 땅이라 씨족과 마을을 중심으로 뭉쳤었다”며 “협동조합의 기본 정신이 태생적으로 갖춰져 있다”고 설명했다. 육지에도 두레가 있지만 제주의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훨씬 더 진하다”는 게 현 조합장의 설명이다. 농민이나 농협 조합장, 직원들이 서로를 더 신뢰할 수 있는 배경이다.

기본적인 조건이 돼 있는 상황에서 농가 개인이 육지로 내다팔기 어렵다보니 자연스럽게 농협을 중심으로 계통출하가 이뤄졌다. 농민 조합원들이 육지처럼 제주 지역농협에서 판매를 못하면 농협을 뒤엎자는 얘기보단 상인보다 더 잘 팔아야 되지 않겠나라는 수준에서 비판하는 것도 그래서다.

농협은 특히 유통·판매 등 경제사업에 공을 들이면서 농산물 가격으로 인한 어려움이 생길 경우 신용사업 등의 기타수입으로 이를 메우며 농민조합원의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경제사업과 신용사업의 총매출이익 비율이 70%대 30%인데 “이 수치를 본 다른 지역 농협 조합장들이 깜짝 놀랄 정도”라는 게 현 조합장의 설명이다. 현 조합장은 “현재 농협이 ‘협동조합의 기본이념에 충실한 농협’, ‘기본이 탄탄한 농협’”이라며 “농협중앙회 전국 업적평가 최상위로 평가받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신유통’ 전문가 조합장의 ‘고군분투’

2002년 조합장에 취임한 현 조합장은 안성 농협연수원에서 신유통 강의를 했던 만큼 농협 운영에 곧바로 신유통을 도입했다. 계통출하에서 1등을 하던 농협이었지만 새로운 도전이었다. 농협에서 생산되는 모든 농산물의 95%를 롯데, 삼성, 현대, 풀무원, CJ 등 대형유통업체와 직거래한 것이다. 당시 가락시장 공판장에서 당근의 최고시세가 1만원이면 유통업체에 1만1,000원에 납품했다. 요구하는 품위에 맞추는 조건이었다. 성공적이었다. 농가들 수익도 당연히 상승했다.

하지만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 현 조합장은 낙선했다. 당시 품위가 안 되는 상품을 함께 출하하는 이른바 속박지를 단속하는 등 품질관리에 직접 뛰어들었지만 조합원과 직원들의 역풍이 잦아들지 않았다. 현 조합장은 “이상적인 운영이 추후 평가돼 당선될 것이라고 뜻을 같이하는 조합장들에게 얘기했었지만 그건 꿈이었다”고 설명했다. 현 조합장이 조합원과 직원, 조합장 등에 대한 협동조합 교육을 무엇보다 강조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하지만 협동조합 기본정신에 입각한 운영과 새로운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2010년 조합장에 다시 당선되면서 무 생산자연합회 조직에 박차를 가했다. 2002년 당시 애초 농협이 월동무 개발과 보급에 앞장서며 점유율을 100% 가까이 보유했었지만 세월이 흐르며 재배면적이 1,000만평으로 늘어나면서 세척장을 갖춘 영농조합법인 30여개와 산지유통인들이 무시장을 주도한 데 따른 것이다. 농협의 점유율은 10% 미만이었다. 현 조합장은 “적어도 35% 이상의 점유율을 보유해야만 주도할 수 있고, 무를 지속가능한 농업으로 만들 수 있다는 판단아래 영농조합법인을 생산자협의회로 묶기 위한 설득에 나섰다”고 했다. 수수료도 받지 않았고, 과잉생산에 따른 산지폐기도 책임지며 결국 설득에 성공했다. 현 조합장은 “현재 재배면적 600만평 중 350만평을 계약재배하고 있고 이를 포함해 500만평 이상을 농협이 주도하고 있으니 점유율은 80%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발상의 전환은 또 있다. 초기엔 5,000~1만평 사이의 농가를 무 작목반으로 묶어 선도농가로 집중 육성하고 이들이 500~1,000평의 고령영세농의 파종, 작업, 수확을 도울 수 있도록 했다. 이후 대농 중심의 선도농가를 육성하고 중소농은 계약재배로 보완했다. 농협이 상위농가만 이끄는 게 아니라 상위농가가 하위농가를 이끌도록 해야 농가소득이 상향평준화된다는 것이 현 조합장의 설명이다. 농협은 또한 최신 관측정보를 농가와 긴밀하게 공유하는가하면 농가 맞춤형 영농지도도 이어가고 있다.

전국 최대 규모 농산물 유통사업소

농협의 월동무 점유율 대폭 상승 등 유통·판매에 강점을 보인 또 다른 축은 바로 농협 농산물 유통사업소에 있다. 강금란 농산물 유통사업소 과장은 “무 사업 위주로 농가는 농사만 짓고 농협이 수확과 세척, 판매까지 하고 정산해서 통장에 입금하는 시스템”이라며 “고령화로 어려움을 겪는 농가에 농협이 인력난을 해소했다. 농가들이 농사만 지으면 그 이후엔 농협이 알아서 해주니 호응이 좋다”고 설명했다. 농산물 유통사업소는 당근·감자·브로콜리·콜라비 등의 농민들이 출하하는 모든 농산물을 공판장을 보내든 직거래처를 통하든 판매를 계속하고 있다. 성산농민들의 칭찬이 마르지 않는 이유다.

그 중심엔 강석보 농산물 유통사업소 소장이 있다. 강 소장은 평소 농사짓는 사람이 있기에 농협직원이 존재한다는 생각으로 직원들과 농산물 판매를 위해 밤낮없이 뛰었다고 한다. 책임자가 앞장서니 직원들 사이에서도 자연스럽게 농산물 판매에 대한 고집스런 노력이 자리잡았다는 후문이다.

강 과장은 “점유율을 더욱 높이는 한편 정부보조 사업과 시범사업을 도입해 농가 소득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공동취재에 나선 좋은농협만들기운동본부 이경태 총무(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연구원)는 “겨울무 주산지답게 계통출하 비율 확대 및 품질관리를 기본으로 유통전문성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경제사업 중심 농협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며 “또한 조합원이 생산한 것은 무엇이던 다 팔수 있도록 책임지는 모습은 농협의 존재이유를 다시 한 번 새겨볼 수 있도록 하는 사례”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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