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이 글을 쓴다는 것

  • 입력 2017.02.17 14:30
  • 수정 2017.02.17 14:32
  • 기자명 황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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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미경북 의성군 봉양면

작년 1월 말쯤 한국농정신문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의 글을 써 달라고 부탁한다는 전화였다. 평소에도 필자가 우리 여성농민회 회원이라 관심 있게 읽고 있었다.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두려움과 함께 새로운 일에 대한 두근거림도 함께 느껴졌다. 며칠 생각할 여유를 두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시작된 1년여의 글쓰기 대장정(?) 이었다.

3월의 마늘 구멍 뚫어 올리기부터 글의 소재가 되었다. 사실 우리 살아가는 것 하나 하나가 글의 소재이지만 이것들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문제였다. 거친 들일로 바쁜 몸이, 저녁 먹고 나면 쓰러져 자야 하는 몸이, 컴퓨터 앞에 앉아 한 페이지를 메운다는 것은 쉽지는 않았다. 그러니 자연히 들일을 하면서 밥을 하면서 화목 보일러에 장작을 던져 넣으면서 생각의 끈을 놓지 않았다. 다행히 글의 소재에 맞게 술술 풀려나가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글은 막히기 일쑤다. 그럴 때는 컴 앞을 벗어난다. 쌓인 설거지를 한판 한다거나, 밖으로 뛰쳐나가 몸으로 부딪히고 오면 훨 낫다. 그렇게 한 페이지를 완성하면 스스로에게도 대견함을 느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부끄러울 때도 많다. 게으름의 발동으로 미루다 미루다 코앞에 눈덩이처럼 닥쳐서 정성없이 메울 때이다. 지나고 생각해 보면 차라리 들로 쫓아다니는 일철 때가 글을 쓰기에는 더 좋은 것 같다. 몸은 정녕 힘들고 피곤하지만 내 몸이 겪은 일들이라 글은 솔하게 써진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농한기의 글은 더 게으름이 발동하는 듯도 하다.

그러나 어쨌든 1년여 동안 글을 쓰면서 내 생활을 내 스스로도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주변 여성농민들로부터 열배 백배 이해한다며 동질감을 확인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너무 몸으로 겪은 일들 위주로 글을 써서 글이 펄펄 살아있다는 칭찬인지 모를 말도 들었다. 그래서 정말 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것의 현실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농사를 지으면서, 아이를 키우면서 그리고 밖으로 도는 남편을 다독이며 하루하루 바둥거리는 삶이다. 좀 더 대안적이고 넓은 관점으로 여성농민의 문제를 풀어 가고 싶은 맘은 있었으나 그거까지는 나의 한계였다.

그래도 글을 쓰면서 나 스스로에게는 참 힘이 되었던 것 같다. 부끄러워 자신 있게 나 농정신문 필자예요 라고 이야기 해 보지는 못했다. 퍼 나르지도 못했다. 그러나 컴퓨터에 일자별로 한 편 한 편이 저장되어지고 쌓여 가면서 내 생활에 스스로가 상을 주는 듯 했다.

이제 50이 가깝다. 50대의 여성농민은 심적으로는 좀 더 안정되게 살고 싶다. 또 자두 열매솎기를 할 때면 밥도 안 넘어가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다 된다는 긍정적인 맘으로 평온하게 살고 싶다. 그래서 그때는 내 이야기가 아닌 주변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내 삶이 최고로 힘든 양 써온 지난 한 해의 뉘우침이다. 그동안 어쭙잖게 써온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또 한해의 농사를 위해 바람 부는 마늘논에 여성농민의 발자국 소리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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