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한 밥상, 불편한 밥상

  • 입력 2017.02.17 14:17
  • 수정 2017.02.17 14:20
  • 기자명 김은진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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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진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몇 년 전 지도교수를 맡고 있는 동아리 엠티에 저녁초대를 받아 간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학생들은 한창 운동을 하는 중이었고 몇몇 식사당번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한 켠에서 압력밥솥의 추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으나 아무도 끄려고 하지 않았다. 그 소리에 부엌을 들어가니 이미 탄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서둘러 불을 끄고 학생들에게 왜 불을 끄지 않았냐고 물었을 때 들은 대답은 지금도 어이가 없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추가 왜 그렇게 심하게 흔들리는지 이유를 몰라 그냥 두었다’는 대답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했더니 압력밥솥을 태어나서 처음 봤다는 학생들이 의외로 많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도 그럴 것이 그 학생들은 밥솥세대가 아니라 전기밥솥세대였기 때문이다.


사실 솥에 밥을 하는 것은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다. 밥물이 끓어 넘치기 직전까지 기다렸다가 불을 조절해서 뜸을 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바쁜 현대생활에서 솥을 지키는 시간은 참 아까운 시간이다. 그런 현대인들을 위해 기업은 친절하게도 전기밥솥을 선사했다. 처음 전기밥솥이 나왔을 때는 스위치가 하나였다. 그러다 예약기능, 압력기능 등 기능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밥솥값은 비싸지고 스위치도 늘어났다. 스위치가 늘어날 때마다 밥솥은 편리해졌다. 요즘 파는 전기밥솥은 그야말로 만능이다. 밥솥으로 못해 먹을 게 없다고 광고한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기능을 가진 밥솥으로 밥 외에 다른 걸 해 먹었다는 사람 별로 보지 못했다. 최근에 전기밥솥으로 해먹는 카스테라 열풍이 젊은 사람들 사이에 유행으로 번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밥솥이 아무리 편리해도 쌀은 씻어야 한다. 그래서 한 때 씻은 쌀도 유행했다. 그러나 씻어 나오는 쌀도, 스위치만 누르면 되는 밥솥도 즉석밥의 편리함에는 당하지 못한다. 그래서 즉석밥까지 유행이다. 요즘 어지간한 집에는 즉석밥이 기본으로 몇 개는 있다고 한다. 더구나 남북갈등이 심할 때는 즉석밥이 예전 라면의 자리를 차지해서 사재기의 대상이 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심지어 즉석밥이 제일 맛있다고 말하는 유명인까지 등장했다. 그렇게 밥하는 것은 불편이고 밥을 사는 것은 편리로 둔갑했다.

그러나 밥상이 어디 밥만으로 차려지겠는가. 반찬도 국도 있어야 하는 게 우리네 밥상이다. 기업은 이것도 놓치지 않았다. 김치부터 즉석국까지 어지간하면 다 만들어 판다. 최근에는 밥과 국을 세트로 만든 상품까지 나오는 판국이다. 그렇게 이제는 부엌에서 조리하는 것은 불편이고 기업이 만들어주는 것을 전자렌지에 데워 먹는 것은 편리가 되었다.

이런 편리는 생협이나 한살림같은 친환경농산물 직거래매장도 피해가지 않는다. 마트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온갖 종류의 즉석밥과 즉석국과 반찬류가 이런 매장에서도 팔린다. 그리고 이런 편리에는 꼭 따라다니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의 밥상 차리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지, 얼마나 많은 노동이 필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즉석밥이 쌀소비 촉진을 위해 얼마나 순기능을 하는지를 주장하는 것도 빠지지 않는 항목 중 하나이다. 더 나아가서 여성노동의 문제까지 나오면 밥상차리기는 그야말로 까딱 잘못하면 양성차별의 오명을 쓸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숱한 논리 속에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있다. 편리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상품들은 결국 내 노동을 다른 곳에 쓰도록 만들어 그 노동으로 벌어들인 돈을 써야만 주어지는 편리라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그렇게 우리가 기업에 의존하고, 돈에 의존하고, 자본에 의존하게 만들어서 번창하고 있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재벌들이 하는 일이라는 것 말이다. 그러니 우리 한 번 생각해 보자. 우리는 지금 노동을 들이는 불편한 밥상과 노동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사는 편한 밥상 사이에서 선택의 갈등이라는 모순에 빠져있지는 않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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