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AI 민간 보고서

  • 입력 2017.01.27 14:57
  • 수정 2017.01.27 15:06
  • 기자명 최용혁(충남 서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용혁(충남 서천)]

최용혁(충남 서천)

사람들은 닭의 안부를 먼저 묻고 나서야 눈을 쳐다봤다. 어디서 누구를 만나도 “반갑다”는 말보다 “조심해라”가 먼저였고, 꼭 가야하는 자리도 ‘꼭 가야하나?’하고 스스로 다시 한 번 물었다. 닭 여남은 마리 키우는 옆집 형님이 “알을 안 낳으니 신고해야겠다”고 농담을 해도 섬뜩했다. 날마다 대한민국 지도를 채워가는 살처분 뉴스는 ‘진격의 거인’이었고, 저녁마다 닭장 위에서 펼쳐지는 가창오리 군무는 차라리 블록버스터 공포영화였다. 혹여나 부딪쳐서라도 반경 3킬로미터 안에는 한 마리도 떨어지지 않길, 두 손 모아 빌었다.

도시 사는 친구들은 자신의 퇴직 걱정을 하며 위로했다. 게중에는 “나도 회사 쫓겨나면 시골 내려가서 닭이나 키워 보려 했는데….” 입방정 떠는 놈도 있었지만, “닥쳐!”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지금 누리는 것이 오래가진 못할 것이고, 이후는 너무 막막하다는 걸 다들 잘 안다. 그러니, 그래, 그 정도 꿈은 있어야지. 대한민국에서 ‘한 방에 훅’ 갈 수 있다는 생각 정도는 장식으로 가지고 산다. 삶을 연명하는 방식으로 발 디딜 땅을 넓히지는 못했고, 어디서 내려오는 줄도 모르는 동아줄에만 매달리는 것을 선택해 왔으므로 자업자득이기도 하다. 밤하늘을 쳐다보다가 “인생 뭐 별 거 있냐”할 때도 있지만, 정신 차리자. 지금 무너지면 끝이다. 한해 농사 망하면 3년 개고생 한다는 거, 3년이 9년이 될 수도 있다는 거, 잘 안다.

살처분 숫자가 2,000만을 돌파한 이후에는 가훈도 정했다. ‘면역력 강화! 자력갱생!’이 그것인데 늦은 감은 있지만 참 잘 했다고 생각할 즈음 바이러스도 변이하기 시작한다. H5N6, H5N8 하는 현란한 이름들 앞에서 면역력 강화 운운하는 것은 촌놈이 봐도 촌스러워 보였다. 성분도 잘 모르는 소독약을 내뿜거나 효과가 바로 있을 리 없는 천혜녹즙, 유산균 등을, 그래도 준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다. 최선을 다하자고 날마다 다짐하면서 뭐든 해보지만 시간이 갈수록, H5N6, H5N8은, 왜 자기들이 우리를 범죄자 취급하는 거지? 자꾸 작아진다. 초라해진다. 텅 빈 축사, 갈아엎어진 배추, 무의 기억이 눈앞을 흐린다. 이 공포와 허무를 사랑하는 친구, 부모님, 형제들은 진심으로 이해할까? 얼마 전 반경 500미터 위험지역으로 살처분 당한 진이 형은 무슨 마음으로 봄을 기다릴까?

정부? 확실히 특화된 재주는 있다. 방역 대책? 사육 환경 개선? 농민 생계 보전? 따위는 좀 더 논의해도 되고, 계속 논의해도 되며, 차차 논의해도 된다. ‘설마’와 ‘감히’ 그리고 ‘그런 미친 짓을’ 하는 우려를 가볍게 뛰어넘어 무엇보다 신속하게 결정한 것이 ‘계란 수입’인데 밥쌀 수입 등에서 보았듯이 우리 정부가 가장 잘 하는 일이다. 계란 수입은 한국농업 흥망사에 한 획을 그을만한 역사적 사건이며 특별한 수입이고 어떤 분기점이 될 만한 수입이다. 국민들의 고단한 저녁 밥상을 들어엎는 짓이다. 안타깝다. 새 봄 새 정부가 들어서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계란 수입 청문회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누가 어떻게 결정했는지 속속들이 밝혀야 한다. 그러니, 국정농단이고 나발이고, 개헌이고 나발이고 대선주자라면 계란 수입에 대한 입장을 가장 먼저 명확히 밝힐 일이다.

 

농사지은 지 올해 18년째를 맞는 최용혁씨는 충남 서천에서 벼농사와 유정란을 생산하고 있다. 쾌적한 평사에서 건강한 닭 1천수를 키우는 농민으로서 이번 `AI대란'과 `계란수입'을 따갑게 비판하고 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