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농활] 로컬푸드 매장에 매일 배추 내는 방법

  • 입력 2017.01.26 21:46
  • 수정 2017.02.01 00:53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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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이리 줘 봐. 내가 자르는 거 받아서 담아 봐.”

내가 봄동을 자르는 모습이 보기에 답답했는지 장두진(62·충남 홍성군 홍성읍)씨가 잠깐 칼을 받아 봄동을 땅에서 떼어내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내가 봄동을 받아 정리해 수레에 담는 속도보다 빨라 하나 둘 땅에 쌓이기 시작한다.

홍성에서 30년 넘게 농사를 지어 온 장씨는 홍성농협 로컬푸드 매장 채소 진열대를 가장 열심히 채운다고 자부하는 농민이다. 창의적으로 농사를 지어 지역 농업 생산량을 늘렸다고 농협 도본부에서 상도 받았단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이는 칼을 든 지 5분이 채 안 돼 허리가 아팠다.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5열 종대로 늘어 선 봄동들은 정직하게 허리를 90도로 굽혀 칼을 대야했다. 처음에는 쪼그려 앉아 잘랐지만 곧 발 근육이 비명을 질러 나도 장씨를 따라하게 됐다.

바깥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추위였지만 하우스 안은 작업하기 좋게 서늘했다. 여름에는 주로 열무를 심는데, 숨 쉬기도 힘든 여름에 비하면 지금은 매우 편한 시기라고.

“여보 큰 배추 좀 잘라야겠는데~!”

한창 봄동을 자르고 있는데 하우스에서 멀지 않은 자택에서 부인 이선욱(59)씨가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이에 봄동이 담긴 수레를 비우고 다른 하우스로 이동하자 이번에는 속이 찬 결구배추들이 나를 맞이했다.

다시 큰 배추로 수레 하나를 채우고 집에 돌아가니 이씨가 갑자기 큰 배추를 가져오라고 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씨가 스마트폰을 보여주자 로컬푸드 채소 진열대를 비추는 CCTV 화면이 보였다. 아까 점심쯤 매장에 내보낸 큰 배추가 벌써 다 나간 모양이다.

“배추 쪽 일은 내가 다 해. 마누라는 고구마하면서 이것들 내보낼 물량 정하고, 가격도 정하고.”

장씨 부부의 큰 배추는 보통 9월 끝자락부터 모종을 심는데, 한 번에 다 심지 않고 몇 일간 간격을 두며 차근차근 심어나간다고 한다. 그래야 로컬푸드 매장에서 하루 소비되는 양에 맞춰 장기간 출하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봄동도 열을 한 줄씩 띄워 심은 후 먼저 심은 것들이 어느 정도 자라면 비어있는 열에 심어 수확시기를 구분하는 방법을 쓰고 있었다. 나는 행여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열의 봄동을 실수로 자를까 노심초사했다.

수확한 배추들을 작업대에 올리고 다듬기 시작했다. 큰 배추는 겉잎을 떼어내고 칼로 밑동을 다듬어주자 가을 김장배추 버금가는 예쁜 모양새가 나왔다.

오후 5시쯤 배추를 장씨의 차량에 싣고 농협으로 출발했다. 이날 오후 수확한 물량의 절반 정도, 중형 SUV 차량의 트렁크를 겨우 채우는 양이었다.

“휴일도 없이 매일 두세 번씩, 겨울에 이렇게 신경 써서 매장에 물건 내는 사람이 우리 말고 없어. 소비자들은 좋지. 이런 배추 마트 가면 보통 4,000원은 하는데, 2,000원짜리 갓 딴 배추가 매일 있잖아.”

그가 존경이 담긴 내 눈빛 뒤 속마음을 읽은 것일까. “이거 보고 행여나 나중에라도 농사지을 생각 꿈도 꾸지 마라”는 엄포에, 정말로 그런 생각이 ‘조금’ 들었던 나는 뜨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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