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이 만들면 다르다

[농협, 새 희망의 길을 찾다①] 전남서남부채소농협

  • 입력 2017.01.26 21:44
  • 수정 2017.01.28 11:14
  • 기자명 박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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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

지난해 정부가 추진한 농협법 개정안이 일부 수정 끝에 국회를 통과하며 농협중앙회 사업구조 개편이 결국 지주체제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사업구조 개편 전면 재평가 및 경제사업연합회 체제로의 전환 등 농협 개혁을 요구하는 농업계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이에 <한국농정신문>은 ‘좋은농협만들기국민운동본부’와 공동기획으로 매월 첫 주 모범적 지역농축협의 목소리를 통해 농협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새롭게 모색할 계획이다.

산지유통종합평가 최우수조직 … 열성조합원과 임직원 희생으로 성장

전영남 전남서남부채소농협 조합장(앞줄 가운데)과 직원들이 지난 20일 전남 무안군 현경면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수년에 걸쳐 받아온 산지유통 최우수농협 상패를 들고 밝게 웃고 있다. 전 조합장은 “품목농협답게 외근이 많다보니 직원들이 한 자리에 모일 기회가 좀처럼 없다”며 “이 정도면 많이 모인 거”라고 귀띔했다. 한승호 기자

전남서남부채소농협의 태동엔 ‘농민’들이 있다. 1990년대 아무리 농사를 잘 지어도 팔 데가 없어 걱정이던 시절 무안군 도로가엔 양파가 성처럼 쌓였고 안 팔리면 썩히기도 했다. 당시 지역 농민회는 지역농협과 무안군청에 몰려가 해결을 요구하며 양파를 던져봤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농민회가 “농민의 손으로 해결해보자”며 영농조합법인을 만들기 위해 두 팔을 걷었다.

마을단위 지역영농조합법인 16개가 만들어졌고 1993년 무안군양념채소류유통사업영농조합(조합)을 설립했다. 시기도 좋았다. 정부에서 양념채소류인 마늘·양파·고추농사를 육성하기 위해 지원했다. 정부지원으로 3년 동안 사무소 건물과 저온창고 등을 지었지만 문제는 유통을 위한 현금이었다. 정부에서 융자를 받으려면 담보가 필요했고, 결국 이사진이 자기 재산을 담보로 잡았다. 이 과정에서 이사 16명 중 8명이 중도하차했다.

처음엔 시장에서도 외면했다. 양파를 출하하는데 다른 곳보다 8톤트럭 1대당 40~50만원씩 시세를 덜 쳐줬던 것이다. 낯선 이름이라 신뢰가 전혀 없었던 것이 문제였다. 결국 1996년까지 3년째 적자가 나며 임직원들이 월급을 50만원씩 받으며 1년을 버텼다.

당시엔 망 둘레에 굵은 상품으로 포장하고 속엔 앙꼬(하품)를 박은 일명 속박이 출하품도 많았지만 조합은 꾸준하게 좋은 물건만을 출하했다. 결국 신뢰도가 쌓이다보니 중매인들이 서로 사려고 경쟁했고, 8톤트럭 1대당 40~50만원을 더 받는 수준이 됐다. 우여곡절 끝에 정상궤도에 진입한 것이다.

하지만 자금 유동성 문제가 계속됐다. 이에 농협중앙회 회원 가입을 결의했지만 지역농협의 견제가 걸림돌이 됐다. 1998년 전남서남부채소농협(농협)을 창립한 후 2년을 동분서주한 끝에 2000년 6월 회원농협이 됐다. 이어 정부가 추진하는 농산물수급안정사업과 유통활성화사업의 무이자 자금 지원을 통해 2001년부터 큰 어려움을 벗어날 수 있었다. 2006년 당선된 전영남 조합장(3선)은 “영농조합에서 농협이 만들어지기까지 전국농민회총연맹 전 의장을 지냈던 배종렬 전 조합장의 공로가 가장 크다”고 평가했다. 

이익금 돌려주는 지역 내 유일농협

전 조합장은 2007년 임기가 시작되자 기존 1년에 양파 6,000톤(20kg 30만망)을 수매·판매하던 것을 획기적으로 늘렸다. 무안의 양파를 전량 수매해보자는 각오로 이전의 4배에 달하는 2만4,000톤(20kg 120만망)을 수매해 그해 다 팔았다. 전 조합장은 “상인들이 눈이 뻘개져서 양파를 사러 다녔고, 농협이 가격을 제시하면 상인들이 1,000~2,000원을 더주고 샀다”고 소회했다. 그때부터 도로가에 쌓여있던 ‘양파성’이 사라졌다는 후문이다.

농협이 있어 농민들이 판로 걱정 없이 마음 놓고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됐고 소득향상도 뒤따랐다. 수매 이후 농협에선 적어도 20kg 1망당 이익환원금을 적게는 1,000원에서 많게는 3,500원까지 농민조합원에 지급하고 있다. 조합원 990여명 중에 계약재배율이 50%가 넘고 계약재배 이행률이 100%에 가까운 것도 그래서다.

양파값 폭락의 경우엔 상황이 달라진다. 협동조합으로서 국민 먹거리를 책임져야 하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중간자적 역할을 해야 하니 수매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이를 이유로 조합원들이 상인에 팔기도 하지만 이는 10%밖에 되지 않는다는 게 전 조합장의 설명이다.

이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농협에선 수익이 나면 25%는 자동으로 적립하고, 나머지는 조합원과 농협이 32.5%씩 나누고 있다. 대폭락으로 지역농협이 휘청거릴 때도 버틸 수 있었던 힘이다.

농협은 최근 7~8년간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협중앙회로부터 산지유통종합평가 결과 최우수조직으로 선정된 바 있다. 계약재배와 관련 농협중앙회의 2015년 수급안정사업 평가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정예조합원 믿음이 가장 큰 힘

김옥길 상무는 농협이 성장하게 된 배경으로 “농협이 원래 하향식 조직인데 우리 농협은 어려운 여건을 타개하고자 농민들이 상향식으로 만든 조직”이라며 “틈새를 돌파해 법의 테두리를 뚫고 회원조합에 가입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품목농협으로 신용사업을 하지 않고 경제사업에 전념하다보니 20여명의 임직원이 산지유통전문가로 성장했고, 기술노하우가 그만큼 쌓인 것도 중요 요소라고 설명했다. 특히 김 상무는 “무엇보다 가장 큰 힘은 정예조합원들”이라며 “직원들도 열심히 했지만 서운하더라도 믿고 출하해준 조합원들이 있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물론 과제도 있다. 김 상무는 “산지농협으로 직원들이 농협 고유의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음에도 처우 등에서 도시농협보다 열악한 상황”이라며 이에 대한 해법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공동취재에 나선 좋은농협만들기운동본부 이경태 총무(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연구원)는 “출하나 판매를 농협이 관리하며 농민들이 판로걱정을 안하는 부분, 유통관리를 잘해서 제 가격을 받는 부분, 계속해서 교섭력이 생기는 부분이 품목농협이 가지는 기본적 특성”이라며 “역사적 과정을 통해 의지있는 농민들이 상향식으로 농협을 만들고 운영하며 자발적 협동의식을 통해 농촌환경에서 일반적으로 생각하기 힘든 성과를 냈다”고 평가했다. 이 연구원은 “가능성을 보여준 동시에 한국농업의 현실로 인한 한계도 존재한다”며 “협동력을 더 강화하고 자기 경쟁력을 높이면서도 농업이 처한 어려운 현실을 함께 개선해야 더욱 성장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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