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칼럼] 평대 해녀 성게국수집에서

  • 입력 2017.01.22 05:05
  • 수정 2017.01.22 05:08
  • 기자명 부석희(제주시 구좌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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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희(제주시 구좌읍)]

부석희(제주시 구좌읍)

우리 마을에도 드디어 국수집이 생겼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옆 마을 읍내에서 만나서 저녁을 먹고 술에 노래 한 자락도 곁들이는 것이 버릇처럼 하는 일상이었다. 우리 마을에도 속 편하게 막걸리 한 잔 할 수 있는 그런 곳이 있어야 하는데 읍내로, 시내로 아까운 시간과 돈을 딴 데로만 쓰고 다닌 것이다.

나는 마을만들기 사업을 하면서 마을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제는 아무리 해도 돈 안 되는 농사 줄이고 힘든 해녀 일 덜 해도 먹고 살 일덜 만들어봅주. 내가 도와주쿠다.” 그랬더니 우리 동네 박 여사가 내 말을 들었는지 식당을 덜컥 열었다. ‘해녀 성게국수집’. 당근 밭과 바당 물질밖에 모르는 그녀가 큰 용기를 내어 평대리 최초로 마을 사람이 하는 식당을 연 것이다. 그녀가 직접 잡는 성게, 소라, 문어, 굴멩이들을 믿고….

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일부러 박 여사네 국수집을 찾았다. 그런 것이 어언 2년이 된다. 이미 나는 국수에 질려버렸지만 마을 사업을 하겠다고 나선 나로서는 동네 어머니의 성공이 박 여사 못지않게 절실했다.

“석희씨, 깻잎 빨리 갖다 줘.” 한 달에 한 번쯤 주문하던 박 여사의 전화가 이젠 일주일도 안 되어 성화다. 정말 장사가 잘 되는지 큰 딸도 해녀로 만들어서 같이 살고, 막내딸도 국수집 옆에 작은 가게를 차리고 아옹다옹 재밌다.

‘제주 살기 열풍.’ 우리 마을 해안가에도 모르는 사람들이 지은 2층, 3층짜리 집들로, 카페로 채워지고 있어 늘 바다를 보고 살던 마을 풍경이 지워지고 있다. 또 육지로 나간 아들들이 고향집을 팔고 어른들을 모시고 갔는지 밤사이 어머니들이 사라졌다는 말이 들리는 요즘이다.

이렇듯 제주 땅을 사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동네 땅값이 너무 올랐다.

나는 한 평 땅도 살 재간이 없지만,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제주 섬에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이기는 하다. 그런 만큼 우리 마을을 지켜야 할 것이 많아졌다.

수많은 농지가 팔려 펜션이 되고 쓰레기매립장은 이미 넘쳐버렸다. 먹을 물 부족, 생전에 없던 차 막힘, 이런저런 기막힌 일들이 우리 마을에도 이미 벌어지거나 금방 닥칠 일이 되었다.

마을은 누구의 것인가? 물론 이곳에 사는 사람의 것이다. 마을엔 주인이 있다. 오랫동안 가꿔온 사람들이 주인인 것이다. 마을 사업도 주민들이 편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우선은 맞는 일이라 생각한다. 우리 박 여사의 해녀 성게국수집도 마을 사람들을 위한 식당일 것이다.

“박 여사는 박 씨라서 박근혜 찍었지!” 박 여사 왈 “여자라서 못 배우고 고생만 한 세월이 억울해서 여성 대통령을 만든 욕심으로 세 딸도 같이 찍었노”라고 한다. “잘 해수다. 이젠 선거 때 나 말도 들어주고 동네일도 같은 편 해줍서!”

박 여사네 식구들과 나는 늦은 밤 동네에서 막걸리에 취해 간다.

 

농민칼럼 세 번째 필자 부석희씨는 우리나라 당근의 주산지, 제주시 구좌읍에서 당근농사를 짓는 농민이다. 최남단의 따뜻한 기후 덕택에 농한기도 없이 주야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그는 제주도의 좋은 농지들이 난개발로 인해 점점 줄어드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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