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국의 농민이여 단결하라!

  • 입력 2017.01.20 11:28
  • 수정 2017.01.20 11:32
  • 기자명 이해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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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영 한신대학교 교수

긴 세월 대개 자유무역협정(FTA)에 관련된 것이지만 통상문제를 다루다 보니 농업문제를 다룰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통상의 차원에서 접근하면 농업은 산업의 문제로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접근이야말로 주류의 접근이고, 당연히 이는 돈벌이 곧 아주 협소한 경제논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농업 곧 ‘업’이란 건 그 연관된 수많은 것들 예컨대 농‘민’과 농‘촌’, 사람과 그 사람이 사는 터에 대한 그 어떤 배려나 공감 등을 철저히 사상한 채 오직 수익성이란 지극히 협소한 잣대로 모든 것을 재단하고 또 이에 근거해 판단하고 집행한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우리 농업과 자동차산업을 비교해, 농업이야말로 우리 경제의 짐에 불과하고 자동차산업은 주춧돌로 간주된다. 그러니 보자. 짐은 버리고, 자동차산업과 같은 주력산업은 어떻게 해서든 키우고 육성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까지 그것이 노무현정부건 이명박근혜정부건 상관없다. 그저 FTA협상만 했다하면 모든 언론은 이렇게 보도한다. ‘농축수산업 울고, 제조업 웃고’. 이것이 공식이다. 경쟁력이 없는 농업은 지갑이다. 가뜩이나 빈 지갑이지만 그나마 마른 수건 짜듯이 농업은 퍼주고, 제조업은 언제나 협상순위에서 갑이다, 그 중 자동차는 슈퍼갑이다. 하지만 누구도 속 시원히 설명하지 못한다. 왜 쓰러져가는 한국농업은 언제나 한국경제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이고 또 지갑인지를.

내말은 이거다. 이런 기조와 관념이 지속되는 한 농업의 미래는 정녕 없다. 바뀌어도 많이 바뀌어야 한다. 제시된 정책이란 게 언 발에 오줌 누기 이상인 게 있었던가. 한국의 통상정책은 지금까지 철저히 친재벌적이었다. 그리고 압도적으로 FTA에 경사돼 있었다. 수없이 많은 비판이 있었음에도 이러한 정책기조는 그대로다. 하지만 친제조업이라 해도, 자동차, 반도체 등 독점재벌위주이지 중소기업 위주는 아니다. 한 때 한국은 스스로 FTA지진아라 표현했지만 지금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와 FTA를 체결한 국가다. FTA를 체결할 때마다 정부는 경제효과를 광고해 왔다. 하지만 그런 경제효과는 발생하지 않았다. 허황된 수치를 흔들며 고용창출을 광고했지만 이 또한 나타나지 않았다. 한국경제는 진즉 저성장 국면으로 진입했고, 수많은 FTA는 여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경제양극화는 더욱 심화됐고 이는 다시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FTA경제효과는 과장된 것일 뿐만 아니라, 대국민 사기극으로 봐야 한다. FTA를 할 때 마다 한국 정부는 농축수산업에서 희생을 강요해 왔다. 그렇다고 제조업에서 FTA로 인한 효과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제 참으로 패러다임의 전환국면이 왔지만 통상관료의 대응은 관료주의와 보신주의 그 이상이 아니다.

브렉시트나 트럼피즘이나 그 기저에는 세계화의 루저들의 반발이 깔려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한국의 양극화를 가속화시켰고 이는 도처에 병리적 현상을 발생시키고 있다. 더욱이 치명적인 것은 양극화로 인한 성장동력의 고갈이다. 그리고 일자리가 말라 버린 지도 오래다. 이 배경에는 자본의 세계화, 국제화 곧 자본이동의 무한자유화가 놓여 있다. 1,000만 촛불은 그 바닥에 깔린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이 최순실 국정농단이란 정치적 이슈를 매개로 폭발한 것 일 뿐이다.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시급하다.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자유무역주의는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파산한지 오래다. 또 FTA가 확산될 수록 그나마 그 효과는 줄어든다는 점이 경험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리고 FTA의 숨어있는 진정한 목표는 관세철폐로 인한 소비자후생 따위가 아님은 이제 자명하다. 그것은 결국 금융자본의 세계화다. 오래전 케인즈가 경고했듯이 고삐 풀린 금융자본이 가져 올 미래는 잿빛 디스토피아일 뿐이다. 트럼프의 희극적 등장은 자유무역의 폭주에 시달린 우리에겐 일종의 ‘숨쉴 틈’이다. 이제 무역의 패러다임을 공정무역 나아가 정의로운 무역(Just Trade)으로 옮겨갈 때다. 오직 가격요인만을 내세운 농축수산품의 자유무역에서부터 제동을 걸어야 한다. 문화부문에는 유네스코 문화다양성협약이란 게 있다. 문화에 대한 각국의 주권을 WTO와 별개로 국제법적으로 확보한 거다. 문화는 교역(Trade)이 아니라 교류(Communication)의 대상이라는 인식이 그 기반이다. 이처럼 목숨산업인 농업 역시 그렇다. 농업에 대한 주권도 일국적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 일국적 차원에선 도무지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아주 담대하고 새로운 접근과 인식이 필요하다. 나는 ‘만국의 농민들이 단결해’ 문화다양성협약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래서 농업을 소위 자유무역에서 항구적으로 제외해야 한다. 그래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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