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들에게 희망을

  • 입력 2017.01.20 11:23
  • 수정 2017.01.20 11:33
  • 기자명 심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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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희 (전남 구례군 마산면)

우리 집 닭들은 AI가 아니라 맨 날 아사의 위협에 빠져있다. 제 때 모이를 얻어먹지 못하니 모이를 보면 정신없이 먹는다. 수탉 두 마리에 암탉 스무 마리, 요즘처럼 닭알이 귀히 여겨지는 때이니 만큼 닭에게 나름 정성을 쏟는다. 그래봤자 기껏해야 제때 먹이 주고 풀 뽑아 던져주는 정도이지만 하루에 다섯 알 이상씩 낳아주니 사람보다 더 귀히 취급받는다.

어릴 적 닭알에 대한 추억은 별로 즐겁지 않다. 할아버지, 아버지, 막내동생의 도시락 맨 밑에 후라이가 숨겨져 있다는 걸 딸 넷은 다 알고 있었으니 남동생의 도시락을 차례로 바꿔치기 하곤 했었다. 그렇게 닭알은 아주 오랜 시절 부의 상징처럼 도시락 한 가운데를 차지했었다. 봄이 되면 닭알은 병아리로 부화시켜야 해서 먹는 건 금지돼 있었다. 당장 먹지 못한다고 별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니 다들 그런가보다 하고 살았던 별것도 아닌 기억들이다.

2017년은 닭띠해라고 한다. 지금처럼 닭이 사람들 입에 회자되는 시기가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닭에 대한 이야기는 약방의 감초처럼 대화 속에 끼어있다.

AI로 인해 산란계 닭 3,000만 마리를 살처분하고 그 여파로 부족해진 달걀은 비행기에 실어와서라도 사먹게 해주겠단다. 정부에서 내놓은 대책에 송구함이 물밀듯 밀려온다.

철새가 감기를 옮긴다고 웬수 취급 받는다. 옆집 닭이 감기 걸렸다고 온 동네 닭들을 산채로 묻는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하루에 두 번 알을 낳게 한 게 문제란다.

애먼 닭만 죽어나간다고 한숨 쉰다. 애먼 닭이라니? 닭이라 불리는 어느 사람 이야기다. 꼭 뒤를 잇는 한마디가 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몇 해 전 여성가족부에서 더 이상 쓰지 말아야 할 속담으로 분류한 것 중 하나이다. 역량이 부족하고 인간으로의 됨됨이가 아니라 물리적인 여성이 권력을 잡는다는 것에 대한 심한 반감이 만들어낸 속담임을 알기에 21세기 차별 없는 사회를 지향한다며 금지까지 시켰던 속담이 유령처럼 다시 살아나 우리 삶 곳곳에서 회자되고 있다.

기분이 몹시 언짢다. 역사는 언제나 정방향으로만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역방향을 향하기도 한다지만 이처럼 심각하게 왜곡된 역사를 보니 다시 정방향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며 의기소침해 진다. 하지만 작은 촛불 하나가 커다란 광장의 힘으로 작용되는 역동성을 목도하니 비정상이 정상화 될 날이 머지않았음을 동시에 확인하기도 한다.

닭장 옆에 앉아 암탉이 울기만을 기다렸다 따뜻한 닭알 하나 깨먹고 빈 껍질을 아궁이 속에 던져 넣으며 완전 범죄를 꿈꿨던 아이가 벌써 오십의 중년이 돼 스무 마리의 닭을 키우고 있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자라라. 너희들은 욕먹을 이유가 하나도 없단다.

2017년 닭들에게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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