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이 겨울철 농한기인데도…

  • 입력 2017.01.15 16:36
  • 수정 2017.01.15 16:53
  • 기자명 황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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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미(경북 의성군 봉양면

이제 정말 본격적인 농한기다. 근본부터 부지런하신 농부들은 마늘 비닐 덮자 마자 자두 밭에 거름을 내시고, 자두나무 가지치기를 하신다. 우리 집 건너편 산 중턱에 있는 70대 중반 부부께서 농사짓는 자두 밭은 벌써 잔가지까지 정리가 깨끗하다.

우리 집은 본격적인 농한기라고 들일은 아예 접어둔다. 우선 땔감만 조달되면 된다. 다행히 사과밭 고목을 땔감으로 베가라는 희소식이 있어 짬짬이 해둔 덕에 올해 땔감나무는 여느 해 보다 쌓여 있다. 겨울철에는 쌀가마니 쌓여있는 것보다 땔감 쌓여 있는 것이 더 흐뭇하다. 우리 자두 밭은 주인과 함께 동면에 들어갔다. 보기엔 안쓰럽다. 이 추운 겨울날 저리 많은 잔가지를 달고 있으려면 나무가 얼마나 힘들까 싶다.

아침밥상에서 막내가 묻는다. “엄마 아빠는 내가 없을 때(학원 갔을 때) 뭐해? 일도 안 하잖아!” 둘 다 딱히 할 말이 없다. 일 없는 겨울철인데도 불구하고 자기 눈에 보기에도 엄마 아빠는 더 분주해 보이니 이상한 모양이다. 농사일을 일단 접어두니 웬 바깥일이 이리도 많은지…. 그래서 오늘 아침상에서 선전포고를 했다.

“일단 우사부터 치소!” “다음 주부터는 자두 전지 시작하소!”, “짚은 언제부터 묶을 생각인데?”, “안 그러면 어디 나갈 생각 하지마소!” 챙길 것을 챙겨 가면서 살아야 하는데, 남자들은 단순세포인지 뭐에 빠지면 뒤도 안 돌아본다.

방학이라 큰딸도 인근 면사무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깨워 먹여 차 태워 시내버스 타는 곳까지 배웅하면 일단은 출근 완수다. 한 식구 느니 빨래며 청소며 만만찮다. 고등학생 아들은 방학이지만 보충수업을 하고 있다. 토요일에 오던 아이가 금요일에 오니 우리 집도 금요일은 불금이 된다. 주말이면 집안이 북적인다. 게임으로 스트레스 푸는 아들, 도깨비 보는 두 딸들… 그 틈에 끼여 자다 벌떡 일어나 제발 좀 자라고 큰 소리 지르고는 다시 곯아떨어지는 엄마, 그제야 집안에 들어서는 남편. 겨울철 우리 집 풍경이다.

이렇게 하루하루 가는 것이 아깝다. 올해는 별스럽게 겨울이 따뜻하다. 혹한으로 유명한 의성의 날씨도 이상 기후임이 분명하다. 마당의 벌통에서 벌들이 나와서 잉잉거린다. 저러다 또 갑자기 추워지면 나왔던 벌들은 동사를 한다. 아직까지 강에는 첫 얼음이 얼지 않았다. 봄처럼 강물이 흐르고 있으니 ‘말’도 먹지를 못했다. 의성에서 유일하게 먹는 ‘말’이다. 일명 물고기 밥인 물풀인데, 연못에 얼음구멍을 뚫어서 얼레 같은 걸로 왕복하면서 말을 건져 올린다. 무생채와 무쳐 먹으면 정말 맛나다.

남편은 건성으로 소죽을 주고 또 나갈 준비를 한다. “아빠 어디 가지? 엄마, 아빠는 왜 자꾸 어디 가?” 막내가 따라 붙는다. 남편은 “우리 효은이 좋은 세상에서 살게 해 줄라고 그러는 거야.” 코끝이 찡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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