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은 지금

절망감에 빠진 농민들 “시키는 대로 빈 축사 청소 해야지”

휴업보상제 취지 맞게 “휴업보상금·기간 책정 제대로 해달라”

“일단 한번 해보라”식 정부 대책 또 나올까

  • 입력 2017.01.13 11:31
  • 수정 2017.01.16 09:18
  • 기자명 김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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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혜원 기자]

 

AI가 휩쓸고 지나간 국내 최대의 오리농가 밀집지역 충북 음성군 맹동면을 지난 9일 다시 찾았다. 도로를 달리며 신경써서 찾아봐야 보이는 음성군에 몇 안되는 거점소독소는 휑하기만 하다. 거점소독소는 주로 도로에서 빠져나와 주차장처럼 있던 공터 한 켠에 간소하게 설치돼 있다. AI발생지를 지나는 모든 차량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가금류 관련 차량만 소독소를 들르게 돼있으니 살처분으로 오리가 없어진 후는 실제로 소독소를 드나드는 차량 수도 거의 없게 된지 오래다.

현재 농민들은 가계소득이 없다. 살처분 보상금 선지급금으로 40%를 주기로 했던 음성군은 두 달 가까이 미루고 있다. 6년째 오리를 길러온 정용성(38)씨는 “이번 AI로 음성 오리 씨가 말랐다”며 “이제는 더 이상 오리를 못 키우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쩔 수 없이 직업을 바꿔야할 상황”이라고 차마 말을 다 잇지 못한다. 한편, 맹동면에서는 규모가 큰 편으로 오리 3만5,000수를 키웠다는 강성보(40)씨는 “지금까지 축사와 제반시설에 투자한 대출금과 이자를 다른 어떤 일을 또 새로 시작해서 막아낼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하던 (오리)사업을 접을 수가 없다”며, 이들은 “끊어진 생계와 계속 갚아야 하는 대출 이자, 그 지불기한을 지키지 못해 불어나는 부채와의 싸움으로 죽을 지경”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시 새끼오리를 들여와 키울 수 있는 날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속을 태우기도 했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발생 최대 피해 지역 중 하나인 충북 음성군 맹동면의 한 양계농장 계사의 문이 지난 9일 굳게 닫혀 있다. 음성 지역은 AI 발생 이후 지금껏 입식이 제한돼 농가들의 볼멘소리가 끊이질 않고 있다. 한승호 기자

일없는 황량한 겨울. 오리를 키워야 먹고살던 농가는 AI 이후 정부가 시키는 방역절차를 따라 오리 없는 오리축사를 소독하고 청소하고 농기계와 농자재도 소독하며 소득 없는 날들을 지내고 있었다. “시키는 대로 빈 축사를 청소하고 있지 않으면 80% 나온다는 보상금마저도 못 받을 수 있다. 언제라도 입식을 허가받고 싶으면 빈 축사를 정부 지침대로 계속 관리하는 수밖에 없다”는 젊은 농민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음성엔 이제 오리가 없다. 미국에서 계란을 수입한다는데, 오리마저도 국내에서 기를 수 없게 되면 수입오리고기가 우리밥상에 오르는 일은 선택이 아닌 강제가 될 것이다. “국내 오리가격이 오르면 정부는 또 가격안정화를 내세워 오리고기를 수입할 것이고 어떻게든 오리사업을 해보려던 농가들은 사업을 접어야 한다”며 경제적 압박을 걱정하는 분위기다.

휴업보상제를 보는 농민들의 입장도 단호했다. 농장 규모가 클수록 빚을 많이 지고 운영한다. 투자금과 대출이자 등 지출이 규모에 비례하기 때문에 사육하는 오리 마리수 당 보상을 받지 않으면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강씨는 “휴업 시 본인(농장주)의 월 대출 이자만 350만원, 기본 전기세 100만 원, 보험금 100만 원 등을 따져볼 때 월 200만원 휴업보상금이라는 터무니없는 계산은 어디서 한 것이냐”고 되물으며 “그런 보상액으로 휴업보상제 시행은 불가능할 것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음성 오리농가들은 “보상금으로 월 200만원을 받는다면 AI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오리를 키워서 수입을 버는 편이 낫다”며 좋은 취지로 언급된 휴업보상제도가 농가를 AI의 위험으로 내모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비판했다.

“맨날 AI가 터지고 나면 정부는 하나 둘 대책이라는 것을 세워 가지고와서 농가에 시키는데, 그 계획을 따르는데 드는 모든 비용은 농민이 부담한다”며 농민은 또 대출을 신청해야 할 형편을 말하다 끝에 한숨을 몰아쉬고 만다. 새로운 정책을 따르지 않으면 당장 오리 사육 허가를 내주지 않으니 오리를 키우는 모든 농가들은 매번 추가되는 정책사항을 일일이 지킬 수밖에 없다. 이제 농가는 현실과 맞지 않아도 “일단 한번 해보라”는 식의 ‘새로운’ 정책들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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