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극장-③ 공짜로 보는 영화가 더 재밌다

  • 입력 2017.01.08 21:53
  • 수정 2017.01.09 15:21
  • 기자명 이상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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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락 소설가]

이상락 소설가

벨이 울리고 영화가 시작된다. 그런데, 영화구경을 온 건 분명한데, 아직 극장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대체로 영화 상영이 시작되고 10분쯤이 지나면 극장 측과 영화사 사이에 그 때까지의 입장객 수를 놓고 정산을 한다. 영화에 따라서 수익금을 4대6으로 분배하거나 혹은 5대5로 나누기도 한다. 물론 4대6의 경우 극장이 4를, 영화사가 6을 차지한다.

필름이 돌아간 지 10분이 지나면 그 때부터 바빠지는 사람들이 또 있다. 입장객들을 통제하는 ‘기도부’의 사람들이다. 그들과 극장 앞에서 서성거리던 사람들 사이에 흥정이 시작된다.

“자, 영화 시작한지 10분밖이 안 됐응께 시방 들어가도 충분히 다 볼 수 있을 것이오.”

“반값에 들어갈 수 있겄소?”

“앗다, 반값은 너무 적고 조깐만 더 내시오.”

“나, 돈이라고는 이거 밖이는 없는디…”

“알겄소. 언능 들어가시오.”

그렇게 추가로 들어가는 사람들로 인하여 발생하는 수입, 즉 매표 마감 후에 할인된 값으로 뒤늦게 들어가는 사람들의 입장료는 기도부의 차지가 된다. 물론 지정좌석제가 실시되지 않았던 시골극장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그런데, 아예 공짜로 영화를 보겠다고 작심하고 나온 사람들이 있었다. 사복차림을 하고 나선 대여섯 명의 중학생들이다. 뒷담 쪽에서 어슬렁거리던 녀석들 중 하나가 허리를 굽히자, 나머지 녀석들이 순식간에 그의 등짝을 딛고 올라 극장의 담을 넘는다. 마지막으로 태권도 유단자 녀석이 기민한 몸놀림으로 넘어 들어가면 공짜 관람의 반은 일단 성공한 셈이다.

지방의 극장들마다 중학생 혹은 고등학생들이 이처럼 ‘도둑관람’을 하려 드는 바람에 골머리를 앓았으나, 그렇다고 극장 담장에다 유리조각을 박거나 철조망을 치지는 않았다. 그 불청객들도 시골극장을 얘기할 때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구성요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장 지붕을 타고 내려가 들키지 않고 뒷문으로 입장해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날은 재수가 좋은 날이다. 바닥으로 내려선 다음 살금살금 뒷문 쪽으로 향하는데 “네, 이놈들, 잘 걸렸다!”, 어깨가 떡 벌어진 기도주임이 녀석들 앞에 버티고 서있다.

“니 이름이 규선이제? 너는 남철이고…어허, 종식이 저놈도 왔네. 웃통 벗고 나란히 서! 야, 김 군아, 미술부에 가서 뼁끼통 조깐 갖고 온나!”

기도주임은 도망치지 못 하도록 녀석들의 윗도리를 모두 벗기고는 페인트 붓으로 얼굴에다 표시를 한다. 그런 다음 서랍 속에서 두 벌의 권투장갑을 꺼낸다.

“시방부터 두 사람씩 권투 시합을 하는 것이여. 이긴 놈은 즉시 극장 안으로 들어가서 영화를 보게 해줄 것이구먼.”

“그라믄 진 사람은…”

“진 놈한테는 극장 벤소 청소를 시킬 것이여. 자, 시이작!”

녀석들이 사생결단을 하고 싸운다. 기도주임은 “레프트 훅, 라이트 어퍼컷!”… 운운하며 중계방송에 열을 올린다.

적당히 싸웠다 싶을 때 시합을 중단시킨 기도 주임이 승자의 손을 들어주면 그 녀석은 휘파람을 불며 극장 안으로 들어가고 진 녀석은 투덜거리며 변소청소를 하러 간다. 가끔은 변소청소 대신에 엎드려뻗치는 벌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반드시 영화 구경은 시켜 주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석규선 씨는 뻔질나게 극장의 담을 넘었기 때문에, 어쩌다 돈을 내고 정문으로 입장한 경우에도 담 넘어 들어간 사람 취급을 받아서 변소청소를 해야 하는 억울한 일도 겪었다고 회고한다. 중학을 졸업한 석규선이 어느 날 밤에 기도주임을 찾아왔다.

“나, 집에 들어가기 싫은디 여그서 하룻밤만 재워주면 안 되까라우?”

“그려. 심심했는디 잘 됐다. 나랑 같이 자자.”

그 날 밤 석규선은 기도주임에게 “내 소원은 영화를 공짜로 실컷 보는 것”이라고 고백했고, 다음 날 군산극장에 아예 잡역부로 취직을 해버렸다. 내가 2002년도에 우일시네마극장(옛 군산극장)을 찾았을 때 그가 내민 명함에는 ‘전무 석규선’이라는 글자가 박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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